
이공계 대학 신입생의 기초수학 역량이 갈수록 약해지고 있다. 고교 교육과정을 마친 학생의 수준과 대학 전공 수업 수준 간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어서다. 전국 최상위권 인재가 모이는 서울대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3일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강경숙 조국혁신당 의원실 등이 서울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서울대가 2023학년도 이공계 신입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수학 특별시험에서 기초 단계 수강 대상자로 분류된 학생은 총 679명(41.8%)이었다. 이들은 ‘기초수학’이나 ‘미적분학의 첫걸음’ 수업을 들어야 한다. 이공계 교과를 무리 없이 따라갈 수 있는 ‘정규반’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는 의미다. 수학적 사고력과 문제 해결 능력이 뛰어나다고 판단돼 ‘고급수학’반에 배정된 신입생은 전체 시험 응시생의 9.2%(149명)에 그쳤다.
2024학년도와 2025학년도에는 정규반 비율이 각각 78.5%, 72.4%로 2023학년도 대비 급격히 상승했다. 하지만 이는 실제 실력 변화라기보다 점수 구간 조정의 영향으로 풀이된다. 서울대는 2023학년도에 55~87점으로 설정한 정규반 점수 구간을 2024학년도에는 30~90점, 2025학년도에는 44~80점으로 바꿨다. 유재준 서울대 자연과학대 학장은 “고등학교에서 이 정도 수준까지 배울 것이라는 가정하에 대학 교육과정이 개설됐는데, 최근 10년간 고등학교 교육과 대학 교육 간 단차가 손쓰기 어려울 정도로 크게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 내 중하위권 대학으로 가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서울의 한 4년제 사립대는 ‘기초학력 증진 프로그램’이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에게 사교육 업체가 운영하는 인터넷 강의 수강권을 끊어준다. 이곳에는 ‘수포자(수학포기자)를 위한 중등 수학’이라는 과목까지 개설돼 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4년에는 ‘행렬’이 고1 수학 필수 과목에서 제외됐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18학년도에는 고교 이과 수학 선택과목인 ‘기하와 벡터’에서 벡터 단원이 통째로 빠졌다. 대부분의 이공계 학과 신입생은 입학 직후 전공 기초 과목으로 선형대수를 배우는데 행렬과 벡터는 선형대수의 핵심 단원으로 꼽힌다.
수학은 인공지능(AI)을 움직이는 ‘엔진’ 역할을 한다. 벡터와 행렬이 기어처럼 수많은 계산을 빠르게 처리한다면 미적분학은 내비게이션같이 학습 방향을 제시한다. 이공계 학생의 심화 수학 학습 공백이 AI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김기응 KAIST 김재철AI대학원 교수는 “미적분, 기하와 벡터, 확률과 통계 등 각각의 과목이 AI를 설계하고 구현하는 데 꼭 필요한 수학적 토대”라며 “어느 한쪽이라도 소홀히 하면 균형 잡힌 역량을 갖추기 어렵고, 이는 곧 세계 경쟁에서 뒤처지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했다.
주요 대학이 이공계 진학을 희망하는 수험생에게 일부 수학 과목을 핵심·권장 과목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이 역시 필수는 아니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상위권 대학도 선발 인원의 절반은 핵심·권장 과목을 이수하지 않고도 합격할 것”이라고 했다.
수학 교육계는 현재 고1 학생이 치르는 2028학년도 수능 수학에서 ‘기하’와 ‘미적분Ⅱ’가 제외되는 것도 이공계의 수학적 기초체력 약화를 부추기는 요인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권오남 서울대 수학교육과 교수는 “수능 범위에 포함되느냐 아니냐가 학생들의 학습 태도와 성취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이미경/고재연 기자 capita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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