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학계에서 기계공학은 현대 문명의 기틀을 다진 '근본 학문'으로 통한다. 인공지능(AI)이 공대 경쟁력을 가늠하는 지표로 떠올랐지만 반도체와 로봇, 모빌리티, 우주 산업의 중심에 기계공학이 있다는데 이견이 없다. 이 분야에서 MIT, 스탠퍼드와 함께 ‘글로벌 3대 메카니컬’ 학파를 형성한 대학이 네덜란드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많지 않다. 세계적인 대학 평가 기관 쿼카렐리시몬즈(QS)는 2023년 기준 기계공학 분야 순위를 매기면서 MIT와 스탠퍼드에 이어 델프트 공대를 3위에 올렸다. KAIST 39위, 서울대 48위, 포스텍은 79위다. 서울대는 지난해 21위로 반등에 성공했지만 10위권과는 격차가 있다.
유스트 헤더 델프트 공대 기계공학부 정밀마이크로시스템공학과 학과장은 "인트로위크는 입학한 석사학생들에게 학과가 무슨 연구를 하는지 알리는 자리"라며 "기업을 초대해 학생들 연구가 기업에서 어떻게 활용될 지 소개하기 위해 마련됐다"고 입을 열었다. 학생들이 연구 트랙을 초기부터 잘 설정하도록 돕기 위한 산학 협력의 장인 셈이다.


이날 인트로위크의 주인공은 글로벌 반도체 생태계의 최상단에 위치한 네덜란드 국민기업 ASML이었다. 마틴 반 해스턴버그 ASML 엔지니어는 "미래의 ASML 인재가 이곳에 있을 것 같다"고 분위기를 띄웠고 한국, 네덜란드, 독일, 이탈리아, 중국, 인도 등 다양한 국가에서 온 학생들은 질문 세례로 화답했다. 유스트 학과장은 "미국과 달리 네덜란드는 학부과정이 3년, 석사 2년"이라며 "네덜란드의 강점인 '하이테크 인더스트리'가 박사급의 전문 인재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더 고도화된 학제 시스템을 운영 중"이라고 전했다.
특히 유스트 학과장은 "이번 학기 개설한 정역학(靜力學) 수업에 900명이 수강 신청을 했다"며 "델프트 공대 역사상 이 정도로 큰 클래스가 열린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실제 네덜란드에서 기계공학은 최고 인기 전공이다. 졸업 전 취업하는 경우가 다반사이고, 사회적 대우도 높다. 공대가 외면받는 한국과는 180도 다르다. 델프트 공대는 ASML에 가장 중요한 인재 공급원 역할을 한다.
연구소의 뿌리도 필립스인 경우가 많다. ASML과 네덜란드 정부가 함께 설립한 극자외선(EUV) 연구소인 'ARCNL', 포토닉스 패키징을 연구하는 'CITC', 헬스케어와 첨단 기술의 융합을 연구하는 '노비오테크' 등이 필립스의 유산이다. 유스트 학과장은 "특히 필립스의 '내츄르쿤디그연구소(NATLab)'가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고 과감한 연구를 많이 했다"며 "이것이 네덜란드 하이테크 타운인 '브레인포트'의 자양분이 됐고, 반도체 경쟁력 강화로 이어졌다"고 했다.
네덜란드의 테크 인재 양성의 산실인 브레인포트에 대해선 '협력'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했다. 그는 "네덜란드에는 출혈적 경쟁 대신 개방적 경쟁을 장려하는 '오픈 컴피티션'이라는 개념이 있다"며 "때로는 경쟁사와도 손잡는 오픈이노베이션을 추구했기 때문에 ASML 같은 기업이 탄생했다"고 했다. 지나친 경쟁보다 자신감 함양이 인재 양성의 핵심이라는 점도 짚었다. 그는 "델프트 공대에 들어올 정도면 이미 수재인 만큼 지식을 얻는 것 보다 지식을 사회에 어떻게 적용할 지 기술사업화를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델프트=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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