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9월 03일 10:40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최근 미국 항소법원의 상호관세 제동 판결에도 불구하고, 8월 7일 미국의 한국산 제품에 대한 상호관세 15% 부과 결정은 대미 수출 기업들에게 ‘관망 모드’의 종료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최근 한미 정상회담 종료 후에도 많은 통상 현안들이 여전히 불확실한 상태로 남아있기는 하지만, 한국 제조 기업은 15% 상호관세 만큼은 새로운 경영환경으로 받아들이고 생존을 위한 액션 플랜 가동에 나서야 한다. ‘혹시나 완화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 속에 관망해온 기업들도 생존을 위해 즉각적이고 전략적인 실행에 나서야 할 시점에 도달했다. 단기 대응책으로 관세 부담 주체와 가격 전략을 재점검하라
가장 우선적으로 CEO들의 액션 플랜은 15% 상호관세 부담의 최적 배분이다. 이는 단순한 원가 문제가 아닌, 기업의 비즈니스 경쟁력에 의해 결정되는 전략적 선택이다. 소비자, 현지법인, 본사 중 어느 주체가 관세로 인해 상승된 비용을 흡수할지에 따라 향후의 시장 포지셔닝이 결정될 수 있다.미국 시장에서 경쟁이 완화되어 있다면, 가격 인상을 통해 일정 부담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것이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업종에서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현실을 고려하면, 인상된 15% 관세를 제품 가격에 전가한다면 곧바로 매출 감소로 이어질 위험이 높다. 따라서 다수의 기업은 일차적으로 본사가 FOB (Free on Board) 가격을 낮추어 관세를 스스로 부담하는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 경우, 간과할 수 있는 리스크가 있다. 미국 세관(CBP)은 가격 인하를 통한 관세 축소를 ‘관세 포탈’로 의심할 수 있으며, 이 경우 단순히 추가 관세와 가산세 부과에 그치지 않고 수입 라이선스 제한, 더 나아가 형사 제재까지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수입 가격 조정이 불투명하게 이뤄진 경우 기업들이 막대한 규모의 제재를 받은 사례가 적지 않다.
따라서 CFO나 법무팀은 사전에 CBP 예규(binding ruling)를 신청해 ‘이전가격(Transfer Pricing, TP)’ 인하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절차를 밟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단순히 가격만 내리는 것이 아니라, 미국 세법(IRC 482)을 준수하는 이전가격정책을 수입 시점 이전부터 문서화하고, 그 가격이 미국 내 법인세 신고와 회계장부에 일관되게 반영되어야 한다.
특히, CBP가 강조하는 핵심 요건 중 하나는 ‘품목별 TP 정책’ 수립이다. 지금까지 기업들은 관행적으로 거래 유형별(예: 완제품 판매, 부품 판매) TP 정책을 수립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CBP는 관세 행정상 ‘품목 단위’로 이전가격 조정 근거가 있어야 세수 누락 여부를 검증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따라서 기업들은 기존 이전 정책을 품목별로 세분화·고도화하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연말에 일괄적으로 보상조정을 실시하더라도, 그 조정금액이 어떻게 각 품목별로 배분되는지를 설명하고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중장기적 대응은 미국 현지 생산
단기적 FOB 가격 인하는 충격 완화 수단일 뿐, 지속가능한 전략은 아니다. 우리 제조업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약 5% 내외 수준인데, 15% 상호관세를 본사가 지속적으로 흡수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제3국으로의 생산 이전은 해법이 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통적인 우회전략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최근까지 많은 기업들이 ‘중국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베트남·멕시코 등을 대안 생산기지로 고려해왔다. 그러나 이번 조치로 베트남 역시 고율 상호관세 부과 대상국에 포함되었고, 멕시코 또한 USMCA가 유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무력화된 상황이다. 이번 15% 상호관세가 WTO나 FTA 체제 내에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무역확장법(232조, 301조)에 근거한 정치·안보 기반의 전략적 통상조치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전통적인 FTA 활용이나 제3국 우회 전략만으로는 더 이상 미국발 통상 리스크를 피할 수 없다.
따라서 중장기적으로는 미국 현지 생산 역량 구축이 유력하고도 가장 확실한 해법이다.
기업이 고려해야 할 현지화 전략으로는 첫째, 단순한 현지 판매법인 차원을 넘어 현지 제조·조립·패키징 기능을 단계적으로 확충해야 한다. 초기에는 현지 부품 조립·최종 공정을 미국 내에서 수행하는 방식으로 시작하되, 장기적으로는 미국 내에서의 완전한 생산기지 구축을 통해 ‘Made in USA’ 비중을 전략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관세를 피하기 위한 선택이 아니라, 앞으로 미국 정부가 지속적으로 추진할 산업 정책의 핵심 방향이기 때문이다. 미국 시장을 중장기적으로 공략하고자 한다면, 미국 내 생산을 염두에 둔 투자로 전략 수정이 불가피하다.
관세는 단순한 비용이 아니라 전략
이번 미국 상호관세는 단순한 비용 증가 이슈가 아니다. 이는 기업의 글로벌 가치사슬(GVC) 재편, 세무·통상 규제 충돌 관리, 나아가 ESG 리스크 관리까지 포괄하는 경영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한다. 불확실성이 해소된 지금, 대미 수출 기업에 필요한 것은 관망에서 실행으로의 신속한 전환이다. 관세 충격을 단순한 원가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가격 전략?이전가격 정책?미국 내 생산 전략까지 유기적으로 연결한 통합적 대응 체계 구축이 절실하다.
상호관세 15% 시대는 이미 도래했다. 이제 기업들은 더 이상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 미국 현지 생산을 포함한 중장기적 전략 수립과 실행에 나서는 기업만이 글로벌 무역 질서의 구조적 재편 속에서도 지속가능한 경쟁우위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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