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72개국 1300여 명 작가의 작품 2500여 점. 규모만으로도 역대급을 자부하는 2025 청주공예비엔날레가 4일 오전 9시 문화제조창 본관에서 열린 개장식을 시작으로 60일간의 대장정에 오른다.
이번 비엔날레는 <세상 짓기 Re_Crafting Tomorrow>라는 주제에 걸맞게 의식주를 기반으로 인류의 삶과 긴밀히 관계 맺어온 공예를 주춧돌로 삼았다. 밥을 짓고 옷을 지으며 집을 짓는 과정에서 공예가 지닌 본질을 다시 바라보려는 시도가 담겼다. 미술·디자인·건축을 아우르고, 인간·자연·사물을 연결하며 공동체와 함께 지구의 내일을 고민하는 공예의 정체성을 구조적이면서도 명징한 서사로 쌓아 올린다.

'공예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청주공예비엔날레의 주제를 대변하는 본전시는 바로 이 문제에 대한 답변이다.
강재영 예술감독은 "인간의 생존과 필수에서 비롯된 보편문명 공예가 어떻게 탐미주의를 거쳐 공동체와 함께하는 공예가 되는지 이번 전시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관람객은 '함께 만들고 함께 나누는 행위'를 통해 공예가 새로운 문명을 생성해 가는 과정을 현장에서 마주할 수 있다. 4개의 소주제로 구성된 본전시에는 16개국 55개 팀 148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첫 번째 소주제는 '보편문명으로서의 공예'다. 드로잉과 콜라주, 벽지, 조각, 설치, 영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매체를 아우르는 프란체스코 시메티(이탈리아), 도자기의 기형을 새롭게 결합한 윤상현(한국), 박테리아를 주입해 살아있는 작품을 만드는 마르친 루삭(폴란드), 전통을 해체해 새로운 공간을 짓는 나카무라 타쿠오(일본) 등 10팀의 19명 작가가 협력하고 진화하는 공예의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다.

'탐미주의자를 위한 공예'는 영혼을 울리는 숭고함, 경외감마저 드는 미적 극치를 담았다. 유기적인 간결함을 완성하는 김희찬(한국), 종이를 활용해 자연의 생명력과 아름다움을 재현하는 압델니세르 이브라힘(이집트), 해부학적 요소가 혼종된 유기적 도자 오브제로 생태계를 창조하는 멜리스 부이룩(튀르키예) 등 공예는 여전히 인간만이 가진 미적 영역임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들이 기다리고 있다.
세 번째 '모든 존재자를 위한 공예'는 공예가 세계를 대하는 태도와 윤리를 바꾸려는 시도다. 환경 파괴, 서식지 상실, 종의 멸종, 기후변화에 대한 우려를 섬유라는 매체에 담아내며 스토리텔링 자수 작업을 선보이는 수지 비커리(호주), 전쟁의 폭력성을 화려한 수공예로 전환해 치유에 대한 서사를 구축한 카티야 트라불시(레바논), 유리로 만든 비닐을 통해 투명한 역설을 시각화하는 리 위푸(중국) 등 13인이 지구와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작품에 담았다.

공예는 손끝으로 빚어내지만, 마음과 사랑으로 함께하는 일이다. 작품이 아닌 관계망을 함께 엮어가는 과정이다. 마지막 소주제인 '공동체와 함께하는 공예'는 함께 만들고 함께 나누는 행위가 사회적 공유이자 세대 간 연결이며 새로운 문명을 생성하는 현장이라 말한다.
호주 오지와 사막에 거주하는 여성들을 지원하는 사회적 기업 찬피 데저트 위버스(호주), 한국 사회에서 쌀이 갖는 의미에 주목하며 공동체를 탐구하는 강진주(한국), 지역 주민에게 자립 기반을 제공하며 행복을 엮는 코라꼿 아롬디(태국), 지난 3월 경북 산불에 타버린 천년 사찰 고운사와 나무를 삶을 지탱하는 수십 개의 지팡이로 되살린 홍림회(한국) 등이 새로운 문명의 생성자로 참여했다.

2025 청주공예비엔날레와 영국 맨체스터 휘트워스 미술관 공동 기획, 인도 국립공예박물관 협력으로 선보이는 이번 전시에서 한국과 인도의 작가 8팀은 서로 다른 문화적·미학적 기반 위에서 자신의 진리를 발현하면서도 서로를 반사하고 공명하며 제작한 신작을 선보인다.
'월인천강(月印千江)'을 바탕으로 섬유 노동의 명상적 수행성에 대한 사유와 통찰을 직조한 작가 장연순(한국), 관람자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얇은 베일 작업으로 한국과 인도 두 세계를 담아낸 작가 유정혜(한국), 인도 쿠치 지역 여성들이 계승해 온 전통의 아플리케, 자수 기법으로 감각적 작품을 완성한 홍영인(한국), 자신만의 '소미사'로 인간 생애의 궤적을 담은 의복 등을 완성한 작가 고소미(한국) 등 4팀의 작품을 비롯해 다채로운 공예품이 기다리고 있다.

조계종 종정 성파 스님의 평생 화업이 담긴 특별한 전시 '명명백백(明明白白)'도 관람객을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 '밝고 또 밝고, 희고 또 희다'는 제목처럼 성파 스님은 이번 특별전에서 무려 100미터에 달하는 하나의 한지 작품을 처음으로 선보인다. 전통 한지 제작 기법의 한계를 넘어선 거대한 그저 가만히 응시하다 보면 모든 번뇌가 사라지고 사유의 세계가 열리는 듯하다.
비엔날레를 놓쳐서는 안 될 이유가 또 있다. 청주공예비엔날레 초대국가전 사상 첫 단독 아시아 주빈국, 태국의 공예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초대국가전은 동시대 미술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큐레이터에게 수여하는 바드 컬리지의 2025 오드리 어마스 큐레이터상 수상자인 그리티야 가위웡 감독이 기획했다. '유연한 시간 속에서 살아가기'라는 주제 아래, 빠른 속도와 상업화 속에서도 고유한 문화와 정신을 지켜낸 태국의 공예를 엿볼 수 있다. 외부 설치작품 '흐름을 담다', 9~14일 사이 펼쳐지는 '태국 문화주간' 등도 함께 둘러봄 직하다.
여기에 에어로케이와 함께하는 스탬프 투어로 모두를 위한 즐거움을 더한다. 본전시에서 시작해 청주공예창작지원센터까지 총 5개의 스탬프를 완성해 응모하면 된다. 2주마다 추첨을 통해 에어로케이 국제선 왕복 항공권을 증정한다. 청주공예비엔날레 한정 스탬프 투어 여권을 매표소에서 받을 수 있다.
박소윤 한경매거진 기자 park.soy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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