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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영화 세트장인가?…AI가 휩쓸고 간 자리, 미술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

입력 2025-09-04 16:24   수정 2025-09-05 02:13


이곳은 미술관인가 폐허인가. 지금까지 이런 전시는 없었다. 미술관 입구는 흙더미로 막혔다. 가벽은 철거됐고 콘크리트 골조는 뼈대를 드러냈다. 1층 전시장 바닥에 깔린 흙 위에는 거대한 고철 덩어리가 자리 잡았다. 강당, 화장실, 통로까지 싹 바뀌었다. 천장에 매달려 거꾸로 자라는 식물을 비롯해 미술관에서 볼 것이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한 존재들이 건물 전체를 점령했다.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아르헨티나 출신 작가 아드리안 비야르 로하스의 개인전 얘기다.
관객을 압도하는 스케일
아트선재센터는 국내에서 가장 실험적인 사립미술관으로 꼽힌다. 여러 거장이 거쳐 간 영향력 있는 미술관이기도 하다. 이런 미술관이 처음으로 전시를 연 지 30주년이 되는 해를 맞이해 칼을 갈았다. 이번 전시를 위해 미술관은 지하부터 옥상까지 대공사를 감행했다. 공간을 전부 뜯어고치다시피 한 결과 전시장은 9월 아트위크 기간 문을 연 수많은 미술관과 갤러리 중에서도 가장 강렬하고 충격적인 공간으로 변신했다.

전시 주인공인 로하스는 ‘인류 종말’이라는 주제에 천착한다. 그는 드로잉, 조각, 영상, 음악, 설치 미술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통해 ‘우리가 알던 세상이 끝난 뒤’ 모습을 선보이며 세계 미술계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종말이라는 주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로하스의 작업은 올해 상반기 한남동 리움미술관에서 전시를 개최한 세계적 거장 피에르 위그의 작품과 맥락이 비슷하다. 다만 상상력을 구현해내는 스케일은 더욱 압도적이고 섬세하다.

거대한 규모는 이번 전시에서 제대로 체감할 수 있다. 미술관은 마치 인류가 갑작스레 멸망한 뒤 오랫동안 방치된 모습처럼 바뀌었다. 정면 출입구가 흙더미로 완전히 막힌 탓에 관람객은 미술관 옆 샛길로 입장해야 한다. 전시 작품을 보호하기 위해 평소 가동하던 온습도 제어 장치도 멈췄다. 흙먼지 냄새, 멈춰버린 공조기에서 느껴지는 습한 공기 등 직접 가봐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요소들이 ‘이게 바로 현대미술’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이런 공간과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작가는 수개월 전부터 미술관의 3차원 도면을 토대로 설치 작품, 세부 공사 내용 등을 구상했다. 실제 공사 기간만 한 달이 넘었다. 김선정 예술감독은 “전시가 끝나고 이걸 어떻게 다 복구하나 싶어 막막하다”며 웃었다.
인류 멸망 후 미술관 모습은

그렇다면 로하스의 상상 속 인류는 왜 멸망한 걸까. 전쟁, 전염병, 환경 파괴 등 수많은 시나리오 중 작가가 염두에 둔 주제는 인공지능(AI)으로 인한 멸망이다. 전시명 ‘아드리안 비야르 로하스: 적군의 언어’에서 가리키는 ‘적’이 바로 AI다. 작가는 이렇게 설명한다.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는 네안데르탈인, 데니소바인 등 다른 종류의 인류와 함께 부대끼며 진화했습니다. 호모 사피엔스에게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은 나와 다른 존재이자 ‘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적을 마주하며 호모 사피엔스는 도구와 생각, 의미 등을 발전해 나갔습니다. 적은 나를 위협하지만 자신의 장점과 가능성을 돌아보고 발전시켜 나갈 수 있도록 돕는 존재이기도 한 것이죠.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AI도 적과 같은 존재입니다. AI는 엄청난 성장을 거듭하며 인간을 돕는 존재로 자리매김했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의 멸망을 초래할지도 모릅니다.”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는 ‘상상의 종말’ 연작은 AI 때문에 인간이 멸망한 미래를 생생하게 상상하도록 만든다. 1층 전시장 가운데에 있는 ‘상상의 종말 VI’는 실제로 돌아가는 세탁기에 거대한 철제 조각을 얹은 듯한 조형물이다. 2022년 호주 시드니 뉴사우스웨일스 주립 미술관, 2023년 헬싱키 비엔날레, 2024년 스위스 바젤 바이엘러재단 미술관에서 소개하며 세계 미술계의 호평을 받았다. 이전 전시와 작품 자체는 거의 동일하지만 충격과 감동은 이번 전시에서 훨씬 커졌다. 흙더미 수 t을 쏟아부어 조성한 압도적인 전시 환경 덕분이다. 전시는 내년 2월 1일까지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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