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성과 대중성이 깔린 거대한 영화 박람회(칸)와 예술적 미학을 고집한 영화의 섬(베니스)의 차이는 현격했다. 고(故) 김기덕 감독이 2012년 ‘피에타’로 황금사자상을 받은 뒤론 한국 영화와 인연이 드물던 베니스는 국내에서도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았다.
20여 년 지속되던 이 역학 구도가 흔들리고 있다. 실마리는 예술과 대중을 잇는 베니스의 세련된 안목에 있다. 지난 4년간 베니스영화제 경쟁·비경쟁 부문에 소개된 작품 중 90여 개가 오스카 후보에 오르고, 상당수가 트로피까지 얻는 등 시상식 시즌의 전초 무대가 됐다.
베니스가 시대의 변화에 언제나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점도 황금사자가 기운을 되찾은 비결이다. 칸이 극장 상영 규정을 앞세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영화를 초청 대상에서 배제한 것과 달리 베니스는 넷플릭스 등에서 공개된 수준급 영화들을 품었다. 심지어 2018년에는 넷플릭스 영화 ‘로마’(감독 알폰소 쿠아론)에 황금사자상을 안겼다.
올해도 이런 베니스의 강점은 여전하다. 기예르모 델 토로 ‘프랑켄슈타인’, 캐스린 비글로 ‘어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 노아 바움백 ‘제이 켈리’ 등 세 편의 넷플릭스 영화가 경쟁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미장센도 놓치지 않았다. 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없다’, 대만의 배우 겸 가수로 유명한 서기가 연출한 ‘소녀’가 경쟁부문에 초청됐다. 시대를 앞서간 작품성으로 저주받은 걸작이라고 불리던 ‘지구를 지켜라!’를 리메이크한 ‘부고니아’도 박수갈채를 받았다.
리도섬에서 마주친 한 현지 영화계 관계자의 한마디는 베니스영화제가 왜 중요한 장소인지를 보여준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국제영화제가 됐다는 건 결국은 가장 먼저 영화라는 예술의 가치를 알아봤기 때문이 아닐까요. 여긴 언제나 새로워요.”
베네치아=유승목 기자 mo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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