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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한 작품"…베니스가 '무언의 액션극' 상영한 이유 [여기는 베니스]

입력 2025-09-05 10:53   수정 2025-09-05 16:18



영화는 시각예술의 한 장르로 묶인다. 하지만 회화와 다른 점은 시각에만 의존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극장에서 한 편의 영화를 볼 때 큰 비중을 차지하는 요소를 꼽으라면 소리, 그중에서 대사를 들 수 있다. 등장인물의 말 한마디는 스크린과 관객을 연결하는 통로이기 때문. 이 대사를 의도적으로 지운다면 어떻게 될까. 100여년 전 무성영화 시대가 저문 이후 굳이 이런 시도를 감행한 작품을 찾기란 쉽지 않다. 서사의 뼈대를 잃을 위험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성공한다면 영화는 언어를 초월해 이미지 자체의 힘으로 관객을 압도할 수 있게 된다.

‘제82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이런 실험에 나선 영화 한 편이 소개됐다. 미국 영화 ‘모터 시티(MOTOR CITY)’다. 영화적 실험성과 대중적 화제를 아우르는 작품을 소개하기 위해 마련된 섹션인 ‘스포트라이트’에 포함돼 베니스 무대를 밟았다. ‘어쩔수가없다’, ‘프랑켄슈타인’ 등 최고영예인 황금사자상을 두고 다투는 대작들 틈바구니에서 덜 주목받는 작품이지만, 한 번쯤 눈길을 줄 수밖에 없다. 영화제가 단순히 시상 무대가 아니라 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시험하는 장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31일 영화제가 열리는 리도섬 ‘살라 자르디노’ 극장에서 살펴봤다.

영화 내용 자체는 특별할 게 없다. 1970년대 쇠락해가는 미국 ‘러스트 벨트’를 상징하는 디트로이트 뒤 세계를 배경으로 갱단에게 삶이 망가진 밀러(앨런 리치슨)는 복수에 나선다. 발단은 감옥에서 풀려나온 직후 여자친구인 소피아(쉐일린 우들리)에게 청혼한 밀러를 다시 경찰이 잡아들이면서부터다. 그의 차에서 코카인이 발견됐다는 이유인데, 사실 이는 소피아의 전 남자친구이자 갱스터인 레이놀즈(벤 포스터)가 덮어씌운 누명이다. 이를 알게 된 밀러는 총과 주먹으로 모든 걸 부순다.



옛 서부극에서부터 이어져 온 식상할 정도로 다분히 미국적인 액션 영화다. 비슷한 영화들과의 차이라면 103분에 달하는 러닝타임에서 등장인물이 말하는 대사가 누구나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널 사랑했어” 정도를 빼면 아예 없는 수준인 극한의 미니멀리즘을 택했다는 것. 영화를 이끄는 요소는 말 그대로 때려 부수는 시각적인 쾌감과 이를 고조시키는 음악이다. 관객은 인물의 시선이나 몸짓, 미묘한 톤 변화를 좇아 이야기의 실마리를 풀어나가야 한다. 다시 말해 영화는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대신 원초적인 시각과 청각만으로 영화적 경험을 선사하겠다는 의도다.

포치 폰치롤리 감독은 영화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화려한 액션부터 폭발음, 배경음, 심지어 정적까지 큰 효과를 내기 위해 조율했습니다. 영화에는 대사가 거의 없지만 결코 침묵의 영화는 아닙니다. 말이 사라졌기 때문에 인물의 육체적 언어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습니다. 언어를 벗겨내고 원초적이면서 보편적인 강렬한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전 세계 누구나 같은 방식으로 영화를 경험할 수 있는 번역이 필요 없는 영화말입니다.”

영화예술의 측면에서 매력적인 실험인 것은 분명하다. 언어의 장벽은 영화의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 중 하나란 점에서다. 해외에서 극장을 찾았을 때 한글 자막이 없어 불편했던 경험이 있다면 공감할 수 있다. 자막 역시 만능은 아니다. 대사가 길거나 이해하기 어려울 경우 시선을 자막에 두느라 빠르게 흘러가는 장면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실험이 성공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모터 시티’ 역시 마찬가지다. 대사가 사라진 자리를 몽타주 기법 등 연출로 채워넣으려 하지만 크게 와닿지는 않는다. 엘리베이터에서 싸움을 벌이는 장면 등 액션이 주는 시각적 즐거움은 분명해도 이미지만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스토리의 깊이가 사라지는 순간들이 보인다. 다만 영화를 이끄는 요소로 음악을 선택한 건 재밌다. 시대 배경에 맞춰 빌 위더스의 ‘Lovely Day’나 도나 서머의 ‘I feel love’ 등의 음악이 마치 뮤직비디오처럼 해당 씬의 분위기를 대신 나서 설명해준다.

실험적인 시도는 높게 사지만 작품성까지 두둔하긴 어렵다는 게 영화에 대한 대체적인 평가다. 미국 연예매체 데드라인은 “처음부터 가속 페달을 밟은 채 끝까지 밀어붙인다”며 강렬한 리듬감에 점수를 줬지만, 영국 매체 더 타임스는 “근본적으로 끔찍한 작품”이라는 혹평을 남겼다. 뛰어나다 할 순 없지만 어렵고 해석이 필요한 영화만 마주하다 지친 관객들에겐 휴식 시간이 될 수 있는 영화다. 실험적 태도와 원초적 재미. 어쩌면 베니스가 ‘모터 시티’를 초대한 건 이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베네치아=유승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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