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이다. 하지만 정작 이를 실행할 사람이 없다.”최근 만난 제조 대기업 임원의 말이다. 실제 산업 현장에선 AI 인재 부족이 이미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제조업에서는 설비 데이터를 분석해 불량률을 낮추거나 공정 효율을 높이는 프로젝트가 전문 인력 부족으로 지연된다. 금융사는 고객 데이터 분석과 리스크 관리 자동화를 추진하지만, 이를 설계하고 운영할 인재가 없어 외부 벤더에 의존한다. 헬스케어 역시 환자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진단·치료 보조 AI가 의료 지식과 기술을 겸비한 인재 부재로 파일럿 단계에 머무는 사례가 많다.
문제는 단순히 속도의 차원이 아니다. 인재 공백은 곧 비용 증가와 혁신 둔화로 이어지며 기업 경쟁력을 녹슬게 한다. 기업들은 제한된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높은 인건비를 감수해야 하고, 이는 곧 투자 여력 축소로 연결된다. 기술 내재화에 실패하면서 외부 솔루션 의존도가 높아지고, 산업별 차별화된 경쟁 우위도 약화된다. 결국 AI는 ‘도입’에만 그치고 실제 가치 창출로 나아가기 어렵다는 것이 현장의 공통된 고민이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의 글로벌 AI 인재 흐름 보고서(Where Will Tomorrow’s AI Geniuses Go?)에 따르면 미국은 최근 3년간 가장 많은 해외 인재를 흡수했지만, 강화된 이민 규제와 연구비 축소로 유입 속도가 둔화하고 있다. 이 공백을 틈타 유럽 일본 아랍에미리트 등은 대규모 연구비 지원, 세제 혜택, 장기 거주 지원을 결합해 글로벌 인재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단순 고용을 넘어 인재가 장기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생태계를 설계하는 점이 특징이다.
메타와 오픈AI는 세계적 연구자를 확보하기 위해 수억달러에 달하는 보상 패키지를 제시하며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구글은 프랑스를 AI 생태계 강화의 핵심 거점으로 삼아 파리에 AI 허브를 공식 개소했으며, 앤스로픽은 영국 런던에 본부를 설립해 유럽·중동·아프리카 전략의 중심지로 키우고 있다. 이처럼 국가 차원의 전략과 글로벌 기업들의 행보가 맞물리며 AI 인재는 이제 특정 기업의 자산을 넘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전략적 자산으로 자리 잡고 있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단기 대응에 머물러 있어 자국 인재 유출을 막고 동시에 해외 인재를 끌어들일 제도적 기반 마련이 시급하다.
이 두 전략은 결국 ‘사람’을 통해서만 실현된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슈퍼스타 연구자 몇 명이 아니라 전략을 실행으로 옮길 수 있는 인재 구조다. 산업별 지식과 AI를 융합할 도메인형 인재, 실제 구현과 고도화를 담당할 개발 인재, 이들을 묶어내는 A급 팀이 핵심이다. 현장에서는 “챗봇은 도입했지만 AI로 성과를 만들 인력이 없다”는 말이 자주 들린다. 바로 이 지점을 해결해야 AI가 단순한 툴이 아니라 기업의 성장 동력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AI 인재 확보는 더 이상 부차적 과제가 아니라 산업 혁신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 조건이다. 지금 필요한 질문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인재 전략을 설계할 것인가”다. 한국 기업이 혁신의 속도를 늦추지 않으려면 지금이 바로 골든타임이다. 이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한국은 기술을 ‘도입’하는 데 머물 뿐,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무대에서 점점 멀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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