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은 미래에 예상되는 편익과 비용을 계산해 행동한다. 이를 기대효용이론이라고 한다. 사업주나 경영자라면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기업과 경영자 입장에서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활동은 당장의 확실한 비용이다. 안전 장치를 마련하고 자동화 장비를 도입하려면 돈을 써야 하고, 근로자들이 안전 규정을 원칙대로 지키게 하려면 어느 정도 생산성 하락을 감수해야 한다. 반면 사고가 발생했을 때 받게 될 처벌과 불이익은 미래의 불확실한 비용이다. 만약 사고가 일어날 확률이 높지 않다면 안전을 위한 투자를 하지 않는 것이 합리적이다.
더구나 인간은 자기에게 유리한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높게 평가하고 불리한 일이 생길 가능성은 낮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낙관 편향’이라고 한다. 처벌 수위를 높여도 기업 경영자는 ‘우리 회사에선 사고가 안 일어나겠지’ 하는 낙관 편향에 빠지기 쉽다. 그 결과 사고 예방을 소홀히 할 가능성이 있다.
또 기업과 정부 사이에는 정보 비대칭이 존재한다. 정부는 기업 경영자가 산업 현장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실질적 조치를 했는지 완벽하게 파악할 수 없다. 현장을 모르는 정부가 권한은 강력하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은 실질적 조치보다 서류를 꾸미는 데 치중한다. 그래야 나중에 혹시 문제가 생기더라도 빠져나갈 구멍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대재해법 시행 후 기업 현장에서는 서류 작업을 하느라 현장 안전 관리에 더 소홀해졌다는 푸념이 나온다.
박재옥·한순구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난해 1월 발표한 ‘중대재해처벌법은 재해를 감소할 수 있는가’ 논문에서 게임이론을 바탕으로 중대재해법 효과를 분석했다. 논문 저자들은 중대재해법이 사고 예방을 위한 사업주의 주의 수준은 높이지만 근로자의 주의 수준은 낮춘다고 봤다. 사고 발생 시 근로자의 책임을 묻지 않을뿐더러 근로자는 거액의 손해배상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경영진이 사고 예방을 위한 안전 수칙을 마련하고 근로자 교육을 강화해도 현장에서 잘 지켜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결국 중대재해법이 사고를 줄인다는 보장은 없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사고가 오히려 증가할 위험도 있다는 것이 논문의 결론이다. 논문은 중대재해법이 효과를 내려면 사업주의 근로자에 대한 통제력이 높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업주가 마련한 안전 관리 규정을 근로자들이 준수하도록 강제해야 한다는 뜻이다.
형법학자들은 엄벌주의가 범죄를 줄일 수 있는지에 회의적이다. 그렇다면 산재 예방 또한 처벌과 제재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예방 활동을 할 때 주는 인센티브를 늘리는 방향으로 법·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유승호 경제교육연구소 기자 us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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