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9일 자신이 '필리핀 차관 사업'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다룬 보도가 나오자, 해당 사업 즉각 중단을 지시한 이재명 대통령을 향해 "정적 탄압"이라고 주장했다.
권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서 "오늘 국회에서 저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보고된 직후 이 대통령은 뜬금없이 저에 대한 비판과 함께 필리핀과의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차관 사업을 전격 파기했다"며 "당정협의회에서 논의한 것은 '경제 살리기' 대책이 아니라, '정적 죽이기' 대책이었던 것 같다. 이는 과거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 저에 대한 수사를 지시했던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정적 탄압"이라고 했다.
권 의원은 "야당 탄압에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바로 국익과 국가 간 외교 관계다. EDCF는 단순한 차관이 아니라, 개발도상국과의 신뢰를 쌓고 대한민국의 외교적 위상을 높이는 전략적 자산"이라며 "기금 신청국의 요청을 가능한 한 존중하는 것이 마땅하다. 우리도 과거 성장기에 A 사업을 위해 차관을 요청했는데, 정작 B 사업을 하라고 강요받았다면 과연 받아들일 수 있었나. 더욱이 필리핀에 빌려준 돈은 결국 필리핀이 갚아야 하는 유상 차관"이라고 했다.
권 의원은 중단된 사업 내용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그는 "이번에 이 대통령이 지적한 사업은 정식 명칭이 PBBM(President Bongbong Marcos Jr.) 농촌 모듈형 교량 사업으로, 필리핀 대통령의 이름까지 붙인 최핵심 국책사업이다. 농촌 접근성을 개선하고 낙후 지역의 농산물 유통망을 확보하기 위한 민생 프로젝트"라며 "그런데 한국 수출입은행 필리핀 사무소가 '이런 사업은 일본한테나 가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사실을 들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데, 막대한 혈세를 투입하고도 외교적 신뢰를 잃는 우를 범해서야 되겠냐"고 했다.
권 의원은 "더욱이 이 대통령은 마치 7000억원을 지켜낸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지만, 이는 행정의 기본조차 모른다는 것을 스스로 드러낸 것일 뿐"이라며 "2024년 10월 발주된 것은 '사업타당성조사(F/S)'다. 이는 모든 공적개발원조 사업에서 본격 심사와 승인 전에 거치는 표준 절차일 뿐, 차관 지원이나 자금 집행을 의미하지 않는다. 당연히 사업비는 집행되지 않았으며, 타당성 조사가 곧 사업 승인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국회의원 개인이 이를 좌지우지할 수도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결국 이 대통령의 지적은 무능을 감추거나 정적 탄압을 정당화하기 위한 정치 쇼임을 스스로 입증한 셈이다. 불과 보름 전, 대통령 스스로 '국가 간 약속은 뒤집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하지 않았나. 이제 그 말을 대통령 본인이 뒤집고 있는 것"이라며 "나아가 동남아 국제 외교의 핵심 축인 필리핀을 상대로, 일국의 대통령이 SNS에서 공개적으로 '부패 우려'를 운운하는 것이야말로 대한민국의 국격을 스스로 떨어뜨리는 행동이다. 대통령은 정적 제거가 아니라 국민을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날 한 매체는 지난해 2월 기획재정부가 '부정부패가 우려되는 부실 사업'으로 판단해 EDCF 차관 지원을 거부했던 약 7000억원 규모의 필리핀 토목 사업이 최상목 당시 기재부 장관 등에 대한 권 의원의 압력으로 인해 재개됐다는 취지로 보도했다. 그러자 이 대통령은 이날 페이스북에 이 보도를 공유하면서 "부정부패 소지가 있는 부실 사업으로 판정된 해당 사업에 대해 즉시 절차 중지를 명령했다"며 "자그마치 7000억 원 규모의 혈세를 불필요하게 낭비하지 않고 부실과 부패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을 사전에 차단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했다.
한편, 통일교 측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권 의원의 체포동의안은 이날 국회에 보고됐다. 현직 국회의원은 회기 중 불체포 특권이 있어 체포동의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야 법원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이 열린다. 정치권에 따르면 권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 표결은 오는 11일 본회의에 상정돼 표결할 전망이다. 체포동의안은 재적 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 의원 과반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더불어민주당이 과반 의석을 점하고 있는 만큼, 가결될 가능성이 높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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