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구무언(有口無言)’. 새 정부가 내놓은 ‘주택 공급 확대 방안’(9·7 부동산 대책)에 관해 한 업계 관계자가 내놓은 평가다. ‘어이가 없어 말이 나오지 않는다’는 의미로 들렸다.정부는 수도권에 2030년까지 매년 27만 가구씩 총 135만 가구를 착공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조성한 공공택지를 민간에 매각하지 않고 직접 시행하는 등 공공의 역할을 전면에 내세운 게 특징이다.
2022년 이후 국내 부동산 경기는 장기 침체 국면에 들어섰다. 공사비와 금리가 급등한 탓이다.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경색과 지방 미분양 누적에 최근엔 중대재해처벌법 대응까지 악재가 꼬리를 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공공 주도의 공급 확대만 강조한다면 사면초가에 빠진 민간이 느끼는 소외감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공공의 역할을 대폭 확대할 방침이다. LH는 향후 5년간 직접 시행과 비주택 용지 용도 전환 등을 통해 12만1000가구를 추가로 착공할 계획이다. 공공택지에서만 37만2000가구 공급이 목표다. 서울 도심에서는 노후 공공임대 재건축(2만3000가구), 공공청사 복합개발(2만8000가구), 미사용 학교부지 개발(3000가구), 국공유지 활용(4000가구), 도심복합사업(5만 가구) 등을 추진한다.
민간 몫은 재건축·재개발(23만4000가구), 1기 신도시 재정비(6만3000가구), 오피스텔 매입형 공급(14만 가구), 소규모 정비사업(1만8000가구) 정도다. 업계에서는 최근 10년간 준공 실적을 볼 때 실제 주택 공급의 80%를 민간이 떠맡고 있다고 본다. 정비사업 조합과 시행사가 나서야 아파트 공급이 현실화된다는 얘기다.
역사적 경험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1988년 수도권 1기 신도시 200만 가구 건설은 민관이 호흡을 맞췄기에 가능했다. 정부는 공공택지를 신속히 조성했고 지방자치단체와 민간은 인허가·시공을 속도감 있게 처리했다. 그 결과 단기간에 대규모 주택이 공급될 수 있었다. 시장 안정이 뒤따랐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이번 대책은 공공이 부담을 떠안고 민간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자금 조달과 규제·산재 리스크로 옴짝달싹 못하는 민간의 현실을 외면한 채 공공 중심의 공급 목표만 내세운다면 성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5년 내 135만 가구 착공’이라는 야심 찬 계획은 민간이 참여할 길을 열어줄 때만 실현 가능하다. 공공 주도 일변도의 정책은 결국 시장과 괴리된 구호에 그칠 공산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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