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임산업의 성장 엔진이 빠르게 식고 있다. 프로젝트 단위로 초집중 근무하고, 여러 대작 게임을 글로벌 시장에 동시에 출시하는 등 업계의 일하는 방식을 무시한 채 획일적인 주 52시간 근무제 적용이 2018년부터 약 7년간 이어진 탓이다. 중국 등 글로벌 게임 강국이 빈틈을 빠르게 치고 들어오면서 한국 기업은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위험에 놓이고, 노동자는 제도 밖의 ‘그림자 노동’에 내몰리는 ‘규제의 역설’이 심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0일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지난해 게임 종사자의 회사 밖 비공식 노동시간은 주당 5.7시간에 달했다. 2020년 2.4시간에서 2.3배로 늘었다. 게임업계의 공식 근로시간은 지난해 주당 44.7시간으로, 전 산업 근로자의 평균 노동시간(38.7시간)보다 15%가량 많다. 2019년 주 52시간제 시행 이후 정식 노동과 그림자 노동 모두 계속 증가한 직종은 게임업 외에 찾아보기 어렵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노동시간까지 고려하면 실제 노동 강도는 주 52시간을 훌쩍 웃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4 게임백서’에 따르면 2023년 국내 게임산업 수출액은 83억9400만달러(약 12조1402억원)로 전년(89억8200만달러)보다 6.5% 줄었다. 게임 수출이 감소세로 돌아선 것은 2000년(-5.7%) 이후 23년 만이다.
업계에서는 노동 규제를 가장 큰 걸림돌로 꼽는다. 국내 대표 게임사 엔씨소프트는 근로시간 준수와 법적 규제 대응을 위해 2021년부터 주 52시간 초과 시 회사 출입문이 자동으로 닫히는 게이트오프제를 도입한 데 이어 최근 근태관리 강화를 위해 ‘15분 룰’(PC 사용 내용을 15분 단위로 기록·관리) 등 추가 방안을 내놨다.
이렇다 보니 법 테두리에서 근무시간을 우회적으로 늘리거나, 단기 계약직을 긴급 투입하는 방식을 도입하는 곳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특히 제도 틈새에서 발생하는 무급 노동과 ‘보이지 않는 초과 근로’도 빈번해지는 추세다. 서울 한 중소 게임개발사 직원은 “게임 출시를 앞두고 3개월간 주 65시간 이상 근무했지만, 포괄임금제를 적용받아 초과근로분 중 극히 일부만 급여로 지급받았다”며 “집에서도 업무 메시지를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사실상 일이 지속됐다”고 말했다.
정부가 최대 3~6개월 단위로 근로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 ‘탄력근로제’를 대안으로 내놨지만, 게임업계에서는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게임업계 특성상 출시 막바지에 수개월간 고강도 작업이 이어지고, 출시 직후에도 긴급 업무가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몰아서 일한 뒤 충분히 쉬는’ 주기를 3개월로 제한한 현 제도로는 취지를 살리기 어렵다는 얘기다.
안정훈/최영총 기자 ajh632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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