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과 대만은 첨단 제조업 수출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국의 8월 수출은 584억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 늘며 8월 기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반도체 수출이 27.1% 증가한 151억달러를 나타내며 역대 최대치였다.
하지만 대만의 추월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같은 달 대만은 585억달러어치를 수출해 월간 기준으로 한국을 처음 추월했다. 반도체 수출이 37.4% 증가한 덕분이다. 올해 상반기 대만의 반도체 수출은 작년보다 63%나 늘었다. 지난해에는 2023년에 비해 59% 뛰었다. 최근 몇 년 새 대만이 강점을 지닌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면서 ‘뛰는 한국 위에 나는 대만’의 구도가 형성된 것이다.
허정 국제통상학회장(서강대 교수)은 “대만은 한국보다 빠르게 미국에 AI 반도체를 공급했고, 패키징 등 첨단 기술에서도 우위를 인정받으며 수요가 집중됐다”며 “미국의 대만 반도체에 대한 신뢰가 공급망을 움직인 결과”라고 분석했다. 허 학회장은 “반도체 관세 부과 후에도 대만은 가격 인상 부담을 고객사에 전가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대만이 이런 선점 효과를 낼 수 있는 배경에는 균형 잡힌 반도체산업 생태계가 있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대만은 메모리에 특화한 한국과 달리 파운드리, 패키징, 설계까지 가치사슬을 폭넓게 구축했다”며 “후공정과 디자인하우스 같은 서비스산업도 강해 AI 시대에 더 안정적인 위치를 차지했다”고 설명했다.
정치 환경도 무시할 수 없다. 한국은 작년 말부터 비상계엄과 탄핵, 대선정국 등 정치적 불안이 이어졌다. 그 결과 소비심리가 얼어붙으며 5분기 연속 0%대 저성장 늪에 빠졌다. 반면 지난해 집권한 라이칭더 총통은 재임 기간에 연평균 3.5%의 경제성장률 달성을 목표로 내걸고 국가 전략산업을 집중 지원하고 있다. TSMC가 이끄는 대만 반도체산업은 국가 주력 산업인 동시에 중국의 침략이 현실화할 경우 미국과 일본의 지원을 보장하는 전략자산이다.
미국과 일본, 유럽연합(EU)이 대대적인 보조금을 내세워 반도체산업을 경쟁적으로 육성하자 대만은 2023년 반도체를 국가 핵심 산업으로 지정하고 연구개발(R&D) 투자액의 25%를 세액공제하는 ‘대만판 반도체법’을 시행했다. 우리나라는 올 1월에야 반도체기업의 시설 투자에 대해 대기업 세액공제율을 15%에서 20%로 높이는 ‘K칩스법’을 통과시켰다.
물론 대만의 지나친 정보통신기술(ICT) 의존도가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구조개혁을 동반하지 않은 경제 성장이 AI 특수가 끝나면 순식간에 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올해 2분기 대만 수출에서 반도체 등 전자부품과 ICT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64%였다. 정부 관계자는 “성장세가 한번 꺾이면 충격이 클 수 있다는 우려가 대만 정부 내부에도 있다”며 “연금·노동·교육 등 과감한 개혁 없이는 경제 재도약이 어렵다는 점에서는 한국과 같은 고민을 안고 있다”고 말했다.
정영효/최만수/하지은 기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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