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과 각 국의 군비 지출 확대가 글로벌 구리 수요를 폭발시키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구리는 인공지능(AI) 확산과 군비 지출 확대라는 두 가지 새로운 메가트렌드를 타고 있다”며 이같은 분석 기사를 보도했다.
예를 들어 광산업계에서 지난 10년간 가장 큰 거래로 꼽히는 앵글로 아메리칸과 테크 리소시스 간 530억 달러 규모의 합병 추진은, 기초 금속인 구리에 대한 미래 수요에 거는 거대한 베팅에 해당한다는 설명이다. 구리 소비는 수년째 증가해왔지만, 새로 공급되는 물량은 수요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WSJ에 따르면 AI의 부상은 구리에 대한 추가 수요의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막대한 전력을 삼키는 서버 팜에 전도성이 뛰어난 구리가 대량 투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AI 데이터센터 한 곳이 1년 동안 사용하는 전력은 수십만 대의 전기차가 쓰는 전력과 맞먹을 수 있다.
연구기관 블룸버그NEF에 따르면 앞으로 10년 동안 데이터센터가 필요로 할 구리는 430만t을 넘는다. 이는 세계 최대 산지인 칠레의 연간 공급량에 거의 맞먹는 규모다.
세계 최대 광산업체인 BHP의 남호주 구리 사업 책임자 애나 와일리는 지난달 한 콘퍼런스에서 “이 센터들을 구축하고, 가동하고, 냉각하는 데 상당한 양의 구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앵글로 아메리칸 인수를 추진하며 세계 최대 구리 생산자 지위를 굳히려 했던 BHP는 2050년까지 구리 수요가 70% 증가할 것으로 내다본다.
여기에 탄피, 전투기, 미사일 시스템 등 무기 생산에도 구리가 들어간다. 각국 정부가 국방비를 늘리는 흐름 속에서 구리 수요가 더해지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나토 동맹국들에 국방 예산 확대 압박을 가하고 있다. 세계 2위 군사력을 보유한 중국도 지출을 늘릴 계획이며, 러시아에서는 무기 생산이 경제의 동력이 됐다.
소시에테제네랄의 채권·원자재 리서치 책임자 마이클 헤이는 “국방비 증가라는 관점에서 구리를 새롭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추산에 따르면, 현재 글로벌 국내총생산(GDP)의 약 2.5% 수준인 군사 지출을 냉전 종식 이전과 비슷한 4%로 끌어올릴 경우 구리 추가 수요는 17만 t에 달한다. 공급과 수요가 팽팽한 시장에서는 적지 않은 양이다.
헤이는 내년에 구리 시장에 소폭의 잉여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했는데, 이 예상에는 국방비 상승으로 인한 추가 수요는 반영되지 않았다. 그는 국제 벤치마크 구리 가격이 t당 약 9800달러인 현재 수준에서 2026~2027년 평균 1만1500달러로 오를 것으로 본다.
트럼프 대통령의 통상정책이 변동성을 키웠음에도 올해 구리 가격은 상승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구리에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힌 7월에는 미국 내 구리 가격이 국제 가격을 크게 웃돌았고, 이후 관세 대상을 구리 완제품으로 좁히자 급락했지만 연중으로는 여전히 상승세다.
미국에서는 핵심 원자재 공급망을 강화하려는 전반적 움직임 속에 구리가 포함돼 있다. 백악관에 따르면 구리는 미 국방부가 두 번째로 많이 사용하는 소재이며, 트럼프 대통령은 국내 생산 확대 의지를 밝혀왔다.
트럼프 행정부가 녹색에너지 보조금을 줄이고 배출 규제를 완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에도, 풍력 터빈과 태양광 발전소는 확산을 이어가고 있다. 가솔린 차량보다 훨씬 많은 구리를 필요로 하는 전기차도 마찬가지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5년 저탄소 에너지, 저배출 연료, 효율화, 전기화 부문에 약 2조2000억 달러의 투자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한다. 화석연료에 대한 투자 규모의 두 배에 이른다.
벤치마크 미네랄 인텔리전스는 전기차용 구리 수요가 2025년 130만 t에서 2030년 230만 t으로 늘어날 것으로 본다. 같은 기간 발전·송전망 업그레이드를 위한 구리 수요는 19% 증가해 1490만 t에 이를 것으로 예상한다.
뉴욕=박신영 특파원 nyus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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