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구조되려고 이 주식을 샀던가.”
삼성전자 주가를 두고 화제가 된 유튜버 침착맨의 한마디는 개인투자자의 심리를 정확히 찌른다. 삼전 주가는 올해 저점(5만1000원) 대비 40% 넘게 반등했지만 2021년 고점에 묶인 투자자가 여전히 많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이들은 지난 3년간 열렬히 구조대를 기다렸고 주가가 7만원대에 안착하자 탈출 대신 다시 버티기에 돌입했다. “3년을 버틴 만큼 예금 이상의 보상”을 노리는 것이다.
‘국민주’ 삼전의 반격은 현실이 될까. 지난 9월 10일, HBM4를 둘러싼 무성한 소문부터 반도체업계 판도 변화까지 반도체 전문 리서치센터장 3인에게 답을 구했다.
국내 21개 증권사가 제시한 삼성전자의 향후 6~12개월 목표가는 최저 7만8000원에서 최고 9만1000원까지 평균 8만5238원으로 집계됐다. 현재 주가와 비교하면 약 12.4%의 추가 상승 여력이 있다는 뜻이다.특히 키움증권, BNK투자증권, IBK투자증권, KB증권 등 4곳의 증권사가 목표가로 9만원대를 제시했다. 지난 7월 장중 7만4000원을 기록한 이후 지지부진했던 ‘국민주’ 삼전의 반격을 향한 기대가 다시 숫자로 모이고 있다.
주가 상승의 핵심 열쇠는 ‘외국인’이다. 불과 1년여 전인 2024년 7월 9일엔 삼성전자의 외국인 보유 지분율은 56.39%까지 치솟으며 9만원 선에 근접했다. 그러나 이후 외국인이 대규모 매도에 나서면서 지분율은 가파르게 낮아졌다. 지난해 12월엔 50.9%로 떨어졌고 같은 기간 주가는 5만원대 초반까지 밀렸다.
증시 전문가들은 현재 50%대 초반에 머무는 외국인 지분율이 다시 55% 수준으로 회복된다면 수급 효과만으로도 예상 밖 선전이 가능하다고 전망한다. 특히 새 정부 출범 이후 외국인의 한국 증시 복귀 흐름이 포착되고 있으며 시가총액 1위 종목인 삼성전자로의 자금 유입이 확대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실제 9월 10일 코스피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배경에도 1조4000억원에 가까운 외국인 순매수가 있었다. 이날 외국인의 매수 상위 종목은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로 전체 순매수의 4분의 1 이상(3830억원)이 삼성전자에 집중됐다.
50.44%에서 55%까지. 외국인 자금이 추가로 들어오려면 삼성의 펀더멘털 개선에 대한 확신이 필요하다.시장이 주목하는 첫째 카드는 6세대 고대역폭메모리 ‘HBM4’다. 지금까지 삼전의 주가 상승을 가로막았던 HBM이 이제 기대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엔비디아에 HBM을 공급할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어서다. 김동원 KB증권 리서치본부장은 “삼성이 가장 기대치가 없던 분야가 HBM이었는데 HBM4는 사업의 가시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HBM은 AI 칩의 필수 메모리로 SK하이닉스의 사상 최대 실적을 이끈 주역이자 삼성전자가 33년 만에 D램 시장 1위 자리를 내주게 만든 결정적 원인이었다. 하이닉스는 ‘AI 큰손’ 엔비디아에 최신 제품인 5세대 HBM3E를 공급하며 올해 물량을 이미 ‘완판’시켰다. 다음 전장은 6세대 HBM4다. 업계는 HBM4에서 주도권을 잡는 기업이 전체 D램 시장을 주도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도 이 판에 승부수를 던졌다. 추격자로서 ‘압도적인 기술 우위’를 보여주겠다는 전략이다. D램 반도체는 회로 선폭이 좁아질수록 성능과 전력 효율이 개선된다. 경쟁사인 SK하이닉스와 미국 마이크론은 HBM4에도 12~13나노미터(nm) 수준의 ‘10나노급 5세대’(D1b) 공정을 그대로 쓰려 하지만 삼성전자는 한 단계 더 진화한 ‘10나노급 6세대’(D1c) 공정을 적용하기로 했다. 한발 앞선 미세화 기술로 속도와 집적도에서 차별화하겠다는 것이다. 김동원 본부장은 “엔비디아는 HBM4 공급 업체들에 더 높은 조건의 전력소모 감소와 속도 향상을 요구하고 있다”며 “향후 삼성전자가 D1c 기반의 HBM4 생산 수율을 안정적으로 달성한다면 내년 HBM 공급량은 큰 폭의 증가세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어 “내년 1분기 평택 캠퍼스 신규 증설을 통해 2026년 HBM 시장점유율을 확대할 것”이라고 전망하며 올 4분기부터 HBM4 초기 생산에 돌입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관건은 수율이다. 기술력이 뛰어나도 불량률이 높으면 엔비디아 신뢰를 얻을 수 없다.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은 검증이 끝난 D1b 공정을 HBM4에 그대로 적용한다. 이미 개발된 지 시간이 지나 안정적으로 양산할 수 있어 불량률이 낮다. 반면 삼성은 한 세대 더 진화한 공정을 택했다. 성능과 효율은 뛰어나지만 아직 개발 단계여서 수율이 낮을 수밖에 없다.
SK하이닉스가 이미 HBM4 양산 체제를 세계 최초로 구축하고, 내년도 HBM 공급 물량 협상 마무리 단계에 들어선 만큼 삼성전자가 HBM4에서 반격하려면 D1c 공정의 수율을 얼마나 빨리 끌어올릴 수 있느냐가 최대 과제가 된다.
삼성전자의 HBM4는 엔비디아의 초기 테스트에서 뚜렷한 불만 없이 순항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신중론도 적지 않다. 그간 삼성전자의 발목을 잡아온 최대 변수가 수율 문제였기 때문이다. 특히 삼성의 HBM은 경쟁사 제품보다 발열에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고, 엔비디아의 품질 검증 절차를 통과하지 못한 이유로도 ‘발열’이 거론돼 왔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은 “HBM4가 본격적으로 탑재되는 시점은 내년 4분기 정도가 될 것”이라며 “아직 검증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단, 그는 “최근 냉각기술 발달로 발열 문제가 일정 부분 해소되고 있다”며 “가능성이 (과거보다는) 개선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 압도적 격차가 삼성엔 오히려 기회로 작용했다. TSMC가 ‘슈퍼갑’으로 군림하면서 고객사인 빅테크 대부분은 일정과 조건에 철저히 휘둘리는 구조가 됐고 빅테크 사이에서는 “한 벤더에 의존하는 건 리스크”라는 불만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공급망 다변화가 필수로 떠오른 상황에서 시장 2위 사업자인 삼성전자에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김동원 본부장은 “그간 빅테크들은 다변화 필요성에 공감했지만 삼성은 뚜렷한 레퍼런스가 없어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며 “이번 테슬라·애플 수주는 그 공백을 메워줄 강력한 레퍼런스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앞서 삼성전자는 테슬라와 23조원 규모의 AI칩 공급 계약을 체결한데 이어 애플과는 아이폰용 차세대 칩 납품을 계약했다는 소식을 알렸다. 금액적인 부분에서 큰 수치는 아니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7~8년에 걸친 물량이라 연간으로는 3조~4조원 수준”이라며 “TSMC가 애플에서 월 12만 장 이상을 소화하는 것과 비교하면 규모의 경제에서 차이가 크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이번 계약이 주는 의미는 작지 않다. 삼성전자가 ‘을의 자세’를 감수하며 빅테크의 신뢰를 되찾고 있다는 점에서다.
이승우 센터장은 “수년간 적자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던 삼성 파운드리가 희망의 나뭇가지를 잡게 됐다”며 “이번 계약에 따른 기업가치 상승분을 수치화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그동안 삼성전자의 기업가치를 누르던 여러 요인들 중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이를 ‘삼성 피벗’이라 부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무너지는 것처럼 보이던 거대한 제국이 침묵 속에서 방향을 바꾸고 있었음을 암시하는 첫 장면이 될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김동원 본부장은 “2분기 4조7000억원을 바닥으로 3분기 8조8000억원, 4분기 9조2000억원으로 실적 개선 추세가 전망된다”며 “특히 반도체(DS) 부문 영업이익은 하반기 8조8000억원에 달해 전년 대비 31%, 상반기 대비로는 491% 가까이 급증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스마트폰(MX) 부문 역시 폴더블폰(갤럭시Z 폴드7·플립7) 판매량이 전작 대비 15% 늘어나며 3조원대 영업이익이 가능하다는 전망이다.
3명의 센터장 모두 2분기를 바닥으로 하반기 실적 개선에 이견이 없었다. 다만 여기엔 시장 회복 효과가 더 크다는 냉정한 시각도 있다. 일부 레거시 제품의 생산중단(EOL) 선언으로 재고 확보 수요가 몰리며 가격이 급등했고 이 흐름이 메모리 전반의 상승세로 확산되고 있다. 여기에 2분기 보수적 회계처리의 기저효과까지 겹치면서 메모리 이익은 크게 늘고 파운드리 역시 적자를 점차 축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노근창 센터장은 “스마트폰·디스플레이뿐 아니라 메모리 가격 상승 덕분에 3분기 실적은 상당히 좋을 것”이라며 “범용 메모리 가격이 내년 1분기까지 오를 것으로 보여 4분기 실적도 시장 예상보다 양호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승우 센터장도 “D램과 낸드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대만·미국 메모리 업체 주가도 뛰었다”며 “삼성전자 역시 실적 개선이 예상되지만 주가 상승폭은 경쟁사에 비해 제한적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시장이 기대하는 삼성의 마지막 ‘킥’은 밸류에이션이다. 삼성전자는 여전히 밸류에이션에서 글로벌 경쟁사 대비 큰 할인 상태다. SK하이닉스가 주가순자산비율(PBR) 1.5배 이상에서 거래되는 반면, 삼성전자는 1배 수준에 머물러 있다. SK하이닉스도 저평가되어 있지만 삼전은 하이닉스와의 밸류에이션 갭이 50% 이상 벌어진 상황이다.
김동원 본부장은 “코스피를 3700선까지 상당히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며 “삼성전자가 연초 대비 30% 넘게 올랐지만 하이닉스는 50% 이상 상승했다. 그 격차를 삼성전자가 점차 메워나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밸류에이션 측면에서도 삼성은 하이닉스 대비 여전히 디스카운트 상태라 HBM4와 파운드리 등 여러 조건이 맞아떨어진다면 추가 상승 여력을 기대해도 좋다”고 덧붙였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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