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하면서 ‘사람’의 가치도 커졌다. 단순히 인력이 많고 적음이 아니라 어떤 역량을 갖춘 인재가 어떤 환경에서 몰입하고 성장하는지가 기업과 국가 경쟁력을 좌우해서다. 자본, 기술, 자원보다 중요성이 커진 인적자본이 기업 인사 관리 차원을 넘어 국가 경제정책의 핵심 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국제표준화기구(ISO)의 인적자본 공시 기준 ISO 30414 개정 역시 중요한 변곡점이다. 9월에 이탈리아 밀라노 총회에서 발표되는 개정판의 가장 큰 핵심은 공시 지표가 기존 58개에서 69개로 늘어나고, 이 중 14개 지표는 기업 규모와 무관하게 대기업 및 중소기업 모두의 ‘필수 공시’ 항목으로 지정됐다. 남녀 임금 격차, 임원·직원 간 임금 격차, 인권 침해 건수, 사회적 약자의 교육 기회, 산업재해율 등이 필수 공시 항목에 포함됐다. 이는 단순한 통계를 넘어 기업의 책임 수준을 드러내는 척도로도 작용하고 있다.
일본은 이런 글로벌 트렌드에 가장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국가다. 2022년 ‘인적자본 가시화 지침’을 제정했고, 2023년부터 도쿄증권거래소 프라임시장 상장사에 공시를 의무화했다. 히타치, 파나소닉, 미쓰비시UFJ 등 주요 기업은 인재 이동률과 교육 투자, 다양성 현황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단순한 규제 대응을 넘어 경영 전략과 인재 전략의 연계성을 강조한 것이다. 이런 변화는 단순히 국제 가이드라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향후 글로벌 공급망과 ESG 평가 기준, 투자자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축이 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ISO 30414는 단순히 대기업용 도구가 아니라 모든 규모 기업에 적용 가능한 ‘사람 중심 경영’의 나침반 역할을 하도록 설계됐다는 점에서 정부 차원의 표준 채택 및 확산 정책이 시급하다.
한국은 중장년층, 중소기업 종사자를 대상으로 하는 재교육 프로그램이 잘 보이지 않는다. 앞으로는 산업단지 기반 학습센터 설립, 직무 경로 기반 성장 지도 제공, 기업 학습문화 진단 시스템 도입 등이 필요하다. 이는 단순한 직무 적응이 아니라 경력 생애주기를 함께 설계하는 국가적 지원책이다.
정책의 성패는 집행이 아니라 평가와 고도화에 달려 있다. 싱가포르는 ‘스킬스퓨처’ 정책을 통해 국가 인적자본 보고서를 매년 발간한다. 산업별 수요, 시민별 학습 과정, 지역별 격차를 분석해 예산과 정책 설계에 반영한다.
한국도 산업·지역·직무별 인사관리(HR) 데이터를 통합해 국가 인적자본 대시보드를 구축해야 한다. 공공기관에는 ISO 30414 기반 보고서 작성을 의무화하고, 민간 기업에는 자발적 공시를 유도할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민간 데이터까지 활용하는 국가 차원의 HR 전략을 수립하고, 이를 기업의 가이드라인으로 되돌려주는 선순환 구조가 필요하다.
한국도 K-ESG 지표와 ISO 30414를 연계해 통합 프레임워크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특히 산재율, 임금 격차, 인권 문제는 ESG와 인적자본 공시 모두에서 중시되는 핵심 항목이다. 기업의 리스크 관리와 사회적 신뢰 확보를 위해 선제적 대응이 요구된다.
인적자본 정책은 단기간에 성과가 드러나지 않는다. 따라서 장기적 효과를 추적할 수 있는 정교한 관리 체계가 필요하다. 덴마크는 평생학습 정책 효과를 5년 단위로 추적하며 직무 이동, 급여 수준, 고용 안정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한국도 ‘정책 기반 인적자본 ROI(return on investment)’ 체계를 마련해 예산 편성, 신규 정책 도입, 기업 지원사업에 반영해야 한다. 성과 없는 정책은 신뢰를 잃는다. 앞으로의 국가 경쟁력은 기술이나 자원이 아니라 사람을 어떻게 키우느냐에 달려 있다. 사람을 비용이 아니라 자산으로 바라보는 시각 전환이 필요하다. 인적자본 공시는 더 이상 기업의 선택이 아니라 정부가 주도해야 할 국가적 과제다. 투명한 정보 공개와 성과 기반 지원이 그 핵심이다.신경수 지속성장연구소(SGI)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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