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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데… '난수표 노란봉투법'

입력 2025-09-16 16:15  



2002년 월드컵에서 거스 히딩크 감독은 체력과 정신력이 주로 강조되던 한국축구에 선수단 관리, 촘촘한 경기 운영 전술 등에서 디테일한 접근을 통해 한국 축구사에 월드컵 4강이라는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아르센 벵거, 펩 과르디올라, 주제 무리뉴. 카를로 안첼로티 모두 디테일한 전술과 전략으로 세계 축구계의 명장 반영에 오른 이들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 그대로 디테일이 승부를 가른다.

노란봉투법은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하여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도 그 범위에 있어서는 사용자로 본다”는 것을 핵심 내용으로 한다. 이른바 ‘실질적 지배력’, 이 여섯 글자를 두고 상당한 논란과 분쟁이 예상되는 가운데 몇 년간의 분쟁을 거쳐 실질적 지배력 문제에 결론이 내려진다고 가정하더라도, 원청과 하청 노동조합 간에 어떠한 방식으로 교섭을 하라고 하는 것인지 디테일이 없다. 디테일이 곧 나온다고 하는데, 교섭단위 등 어려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다 담아낼 수 있을지, 나중에 법원에서 이를 받아들일지 등 염려가 많다.

노동조합법은 교섭창구단일화 제도를 규정하면서 “교섭대표노동조합을 결정하여야 하는 단위는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으로 한다”라고 하여 1사(사업장) 1교섭단위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서로 다른 회사 또는 다른 사업장에 있는 하청에 있는 노동조합과 원청이 단체교섭을 하라고 하니,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가 된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별도 이해관계인인 원청 노동조합, 하청 사업주를 고려하고 하청도 복수, 노동조합도 복수일 수 있는 점을 고려하면 더더욱 풀기 어려운 문제가 된다. 노란봉투법에 대한 논의, 특히 적극 찬성하는 측의 입장을 가만히 들어보면 이런 디테일에 대한 고민 없이 '하청이 딱 한 개, 하청 노동조합도 딱 한 개'이며 원청에는 노동조합이 없는 상황만을 가정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어쨌든 주사위는 던져졌고, 디테일을 생각해봐야 하는데, 대략 세 가지 방안이 있는 것 같다.



먼저 1안은 원청과 하청들 모두를 하나의 교섭단위로 보는 방안이다. 원청이 사용자이고 원청을 상대로 하는 단체교섭이니 전체가 하나의 교섭단위로 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노란봉투법 법문의 내용이나 (그 실현가능성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하청 근로자의 근로조건 향상이라는 취지에도 부합해보인다. 이 방안대로면 원청 노동조합들(A, B)과 하청 노동조합들(C, D, E, F, G, H) 사이에 교섭창구단일화 절차를 거쳐야 하고. 만약 하청 노동조합 중에 교섭대표노동조합이 나오면, 교섭대표노동조합이 된 하청 노동조합이 원청 근로자들의 근로조건도 결정해버릴 수 있다.

2안은 원청과 하청은 교섭단위를 분리하되, 하청들은 모두 하나의 교섭단위로 보는 방안이다. 근로조건이나 교섭관행 등 여러가지 측면에서 원청과 하청은 차이점이 있기 때문에 서로 다른 교섭단위로 보는 것으로 이해되고, 3안의 단점과 교섭의 효율성을 고려한 것으로 보이나 원청과 하청은 분리하면서 하청들 사이에 대해서는 통합을 하는 법적 근거나 논리를 찾기는 어렵다.

3안은 원청과 하청도 분리하고, 하청들 사이에도 각각의 교섭단위로 보는 방안이다. 하청 시각에서 1사 1교섭단위 원칙에 가장 부합한 방안인데, 하청이 1000여곳이 되면 매일 단체교섭을 하더라도 3년에 1번 만나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법령에는 아무런 내용이 없고, 어느 방안도 가능하다고 생각되며, 1안이나 2안으로 하더라도 교섭단위분리제도를 통해 2안, 3안으로 변경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정답이 있다고 보기 어려우며, 회사로서는 사업장의 실정에 맞게 어떤 방안이든 택하여 운영하면 될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2안은 법적 근거가 가장 취약해보이고, 1안이나 3안은 현실성이 다소 떨어지는 문제가 있다.

한편, 교섭창구단일화 절차에 참여하지 않은 노동조합은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없다. 관련하여 만약 회사는 1안이나 2안을 전제로 교섭창구단일화 절차를 진행하자, C 노동조합은 3안이 맞다고 판단하여 교섭창구단일화 절차에 참여하지 않은 채 추후 별도로 단체교섭을 요구하면, 이미 교섭대표노동조합과 단체교섭을 진행 중인 원청은 이를 거절하게 되고, 이때 분쟁이 발생하게 되면 교섭단위를 어떻게 설정하는 게 맞는지 법원을 통해 결정되는 상황이 생길 것이다.

덜컥 입법이 된 상황에서 교섭창구단일화 제도를 접목시키려니 디테일이 너무 어려운데, 사용자로서는 교섭창구단일화 제도를 이용하지 않고 개별교섭을 할 수 있고, 노동계에서도 지속적으로 교섭창구단일화 제도가 위헌이라는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부 개별교섭을 해버리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으나(위 방안 중 3안이 가장 유사함) 그로 인한 비효율은 너무 크니 이 또한 쉽게 가기 어려운 길이다.

이상의 내용은 노란봉투법과 관련한 중요한 이해관계자인 하청 사업주라는 변수를 완전히 배제하고, 교섭안건이 된다는 점에 대하여 이견이 없는 경우를 가정한 것인데, 하청사업주를 고려하고, 교섭 도중 실질적 지배력 유무에 다툼이 있을 만한 안건의 추가·변경까지 고려하면, 정답을 찾기가 너무도 어렵다.

김상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인사노무그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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