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독일 뮌헨의 중심지 오데온광장. 중세시대를 연상케 하는 묵직한 건축물 사이로 초대형 디스플레이 등 최신 장비로 무장한 수많은 자동차 부스가 주면 1㎞ 거리에 줄지어 들어섰다. 부스 안은 차량을 둘러보는 관람객들로 북적였고, 밖에는 맥주와 소시지를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각 브랜드가 내놓은 230여 대 차량은 시승 신청자를 태운 채 주변을 쉼 없이 쏘다녔다. 그렇게 뮌헨은 세계 최대 모터쇼 ‘IAA 모빌리티 2025’가 열린 1주일 동안 ‘자동차 축제’ 장소로 바뀌었다.

2년마다 열리는 IAA는 실내(메세)에서 열리는 ‘서밋’과 야외에 부스를 꾸리는 ‘오픈스페이스’ 등 투트랙 형태다. 서밋이 언론을 상대로 하는 신차 발표 및 비즈니스 미팅을 위한 자리라면, 오픈스페이스는 일반 시민과 관광객을 위한 자동차 전시·체험 공간이다. 사람들로 넘치는 도심 한복판에 판을 깔아주니, 마다할 회사가 없다.

업체 간 신경전은 부스 위치를 정할 때부터 시작된다. 유럽 최대 자동차 업체인 폭스바겐은 오데온광장 정중앙에 부스를 꾸렸다. 이곳에서 베스트셀링카인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신형 티록을 비롯해 소형 전기 SUV인 ID.크로스 콘셉트카 등을 공개했다. 그 옆에는 역사상 최고의 해치백 모델로 평가받는 골프 2세대(1983년 첫 생산)가 자리 잡았다. 폭스바겐의 깊은 역사를 보여주기 위해 박물관에나 어울릴 만한 옛 모델을 끄집어냈다.

건너편에는 중국 자동차업계의 맹주인 비야디(BYD)가 터를 잡았다. 3600만원대(2만2990유로) 저가 전기차 ‘돌핀서프’부터 하이브리드카 ‘씰 6 DM-i 투어링’까지 다양한 차종을 앞세워 중국의 ‘자동차 굴기’를 보여줬다.

메르세데스벤츠는 바이에른 왕국의 통치자 비텔스바흐 가문이 궁궐로 쓴 뮌헨 레지덴츠에 부스를 마련했다. 벤츠의 상징인 삼각별 로고가 박힌 대형 조형물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조형물은 준중형 SUV인 GLC에 모터와 배터리를 장착한 ‘GLC 위드 EQ 테크놀로지’ 차량의 그릴을 형상화한 것이다. 세계 최초로 8기통 엔진을 적용한 ‘280 SE 3.5’(1969년 최초 생산)와 벤츠의 고성능 럭셔리 브랜드 AMG, 최고급 라인인 마이바흐 차량이 이 조형물을 에워쌌다. 벤츠의 앞선 기술력과 높은 품격, 그리고 오랜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기 위한 배치였다.

뮌헨이 고향인 BMW그룹은 벤츠 부스에서 한 블록 떨어진 막스 요제프 광장 한복판에 자리를 깔았다. 1818년 개관한 뮌헨 국립극장을 배경 삼아 대형 단상을 세운 뒤 그 위에 신형 SUV인 iX3를 올렸다. 부스 안에는 디스플레이 시스템 ‘파노라믹 비전’ 등 신기술 소개가 한창이었다. 업계 관계자는 “고향에서 열리는 행사다 보니 독일 메이커들은 부스를 차리는 데만 수백억원을 쏟아부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 메이커들은 부스에 자신만의 정체성과 지향점을 담는다. ‘대체 불가능’을 주제로 내건 포르쉐는 내연기관차인 신형 포르쉐 911 터보 S를 최초로 공개했다. 마칸4, 타이칸 GTS 등 전기차들을 한데 모아 부스 입구에 배치한 것과 달리 911 터보 S는 별도 공간에 홀로 전시했다. 전동화가 대세여도 포르쉐의 정체성인 고성능 내연기관차 생산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셈이다.

아우디는 새하얀 벽면의 실내 공간에 전기 스포츠카 ‘아우디 콘셉트 C’를 배치했다. 아우디의 대표 스포츠카 TT를 계승한 차량으로, 단단한 금속을 연상하게 하는 차량 외관이 부스 분위기와 묘하게 어울렸다. 르노는 랠리(자동차 경주)카의 전설로 불리는 ‘르노 5 터보’를 본떠 제조한 초고성능 전기 해치백 ‘르노5 터보 3E’를 선보였다. 중국 샤오펑은 중형 전기 세단 신형 P7과 함께 휴머노이드를 한가운데 배치해 눈길을 끌었다.

지난주 뮌헨은 가족 단위 관람객 천지였다. 폭스바겐 부스에선 한 남성이 어린 딸과 함께 차에서 나온 재활용 소재로 키링을 만들었고, 포르쉐의 엠블럼을 형상화한 회전목마는 아이들로 가득 찼다. 아이스크림을 나눠준 아우디 부스와 무료 커리부어스트(카레와 케첩을 넣은 소시지)를 제공한 폭스바겐 푸드트럭에는 긴 줄이 늘어섰다.

IAA가 야외 부스를 꾸린 건 행사 장소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뮌헨으로 옮긴 2021년부터다. 다른 모터쇼처럼 관람객 감소로 골머리를 앓자 주최 측이 이런 행사를 고안했다. 업계 관계자는 “IAA는 이제 단순한 자동차 박람회를 넘어 지역 축제로 자리 잡았다”며 “관람객이 줄고 있는 서울모터쇼도 벤치마킹할 만하다”고 했다.
뮌헨=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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