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로앤비즈의 'Law Street' 칼럼은 기업과 개인에게 실용적인 법률 지식을 제공합니다. 전문 변호사들이 조세, 상속, 노동, 공정거래, M&A, 금융 등 다양한 분야의 법률 이슈를 다루며, 주요 판결 분석도 제공합니다.

세금 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대다수 납세자들은 세금을 제때 잘 냅니다. 팍팍한 살림에 적지 않은 부담이 되는 세금을 기어코 걷어 가겠다는 정부에 대해 온갖 원망과 욕설을 쏟아내면서도 때가 되면 꼬박꼬박 이른바 ‘성실납세’를 합니다. 이유가 뭘까요. 아무리 싫어도 내야만 하도록 법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가끔 고객으로부터 질문을 받습니다. 세금을 내지 않고 몇 년 정도 요리조리 잘 피해 다니면 납세의무가 아예 없어질 수 있을까요. 마치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일정 기간 수사기관을 잘 피해 다니면 공소시효가 만료돼 처벌을 면하는 경우를 염두에 둔 질문입니다. 세금과 관련해서는 두 가지 경우로 나눠 생각해 봐야 합니다.
숨기고 싶은 세금
먼저 애초에 납부세액을 신고하지도 않았고, 따로 과세처분도 없었던 경우입니다. 종합소득세나 법인세, 부가가치세 등 주요 세목은 납세자가 자진해 과세표준을 신고할 때 비로소 그에 따라 정해진 세액을 납부할 법적 의무가 생깁니다. 세법상으로는 이를 ‘납세의무가 확정된다’고 부릅니다.자진 신고를 하지 않으면 세금을 낼 법적 의무가 생기지 않을까요. 신고를 하더라도 실제 내야 할 세금보다 적게 신고하면 그 범위에서만 납세의무가 생기는 것일까요. 맞습니다. 하지만 과세관청이 미신고나 과소신고 사실을 알게 되면 신고하지 않은 세금을 내라거나 신고한 것보다 더 내라는 ‘부과처분’을 할 수 있습니다. 과세관청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갖고 있어 미신고·과소신고는 합리적인 선택이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과세관청이 납세자의 미신고·과소신고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면 부과처분을 언제든 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과세관청이 부과처분을 할 수 있는 기한이 있는데, 이를 ‘부과권의 제척기간’이라고 합니다. 그 기간은 원칙적으로 부과할 수 있는 날부터 5년입니다. 아예 신고를 하지 않은 경우에는 7년이 되고, 서류를 조작하거나 차명을 사용하는 등으로 과세관청을 속인 경우에는 10년이 됩니다.
거래 관계에 의해 상호 확인이 되지 않는 상속세나 증여세의 경우 기본이 10년이고, 미신고의 경우 15년이 됩니다. 여기에 사기 등 속이는 방법이 적용된 경우에는 과세관청이 이를 안 날로부터 1년으로 정하고 있어 사실상 부과제척기간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세무당국은 '징수권' 확보
일단 신고가 이뤄지거나 부과처분이 내려졌는데 세금을 내지 않고 버티는 경우는 어떨까요. 앞의 경우와 달리 세금을 내야 할 법적 의무가 발생한 상태에서 버티는 것입니다. 법적 의무를 발생시키는 것이 ‘부과권’에 관한 것이라면, 발생한 의무에 따라 국가가 돈을 거둬들이는 것은 ‘징수권’에 관한 것입니다.부과권에 ‘제척기간’이 있다면, 징수권에는 ‘소멸시효’가 있습니다. 소멸시효는 납부기한으로부터 5년이고, 5억원 이상의 국세는 10년입니다. 부과권의 제척기간과 달리 소멸시효에는 ‘중단’ 개념이 있습니다. 한 번 중단되면 처음부터 시효가 다시 진행됩니다.

과세관청이 독촉장(제2차 납세의무자에 대해서는 납부최고)을 서면으로 보내 납부기한을 다시 정하면, 그 기한 만료일부터 새로 소멸시효가 진행됩니다. 다만 독촉장으로 시효를 중단시키는 것은 과세관청이 한 번만 쓸 수 있는 카드입니다.
징수권을 가진 과세관청은 납세자의 각종 재산을 압류할 수 있습니다. 압류가 이루어지면 소멸시효는 중단되고, 압류가 해제되면 다시 처음부터 진행됩니다. 압류가 유지되는 동안에는 시효가 진행되지 않습니다.
'버티기'가 어려운 이유
내야 할 세금을 내지 않고 버티며 시간만 보내 납부의무를 면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세금을 내지 않고 버티면 또 어떤 일이 일어나도록 법이 정하고 있을까요. 우선 제때 과세표준 신고를 하지 않으면 가산세가 붙습니다. 내야 할 세액의 20%가 무조건 붙으므로 무시할 수 없습니다.제대로 신고하지 않고 과소신고하면 과소신고된 세액의 10%가 곧바로 붙습니다. 납부기한이 지나면 지연손해금 성격의 납부지연가산세가 우선 3% 붙고, 이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연이자로 약 8%에 이르는 가산세가 추가로 쌓입니다. (무한정 쌓이지는 않고 세목별로 한도가 있긴 합니다.)
납세의무가 확정되면 과세관청은 재판 없이 곧장 납세자의 재산을 압류할 수 있습니다. 민사법의 ‘강제집행’을 세법은 ‘체납처분’이라고 합니다. 부동산, 계좌, 예금 등 과세관청이 파악할 수 있는 모든 재산을 신속하게 압류할 수 있습니다. 일단 압류되면 납세자는 재산권을 행사할 수 없고, 받을 돈도 자유롭게 받지 못합니다. 과세처분에 불복하지 않으면 압류된 재산은 공매로 처분돼 미납세액에 충당되고, 남은 돈만 돌려받게 됩니다.

압류 전에 재산을 제3자에게 넘겨 놓으면 괜찮을까요. 과세관청은 그 제3자를 상대로 사해행위 취소소송을 제기해 돈을 받아냅니다. 국가가 제기하는 사해행위 취소소송은 실무에서 흔히 발생하므로 세금 부담을 피해 보려고 지인이나 가족에게 재산을 넘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미납 세액이 크면 체납자 명단을 공개해 망신을 주거나 출국을 금지하기도 합니다.
세금을 내기 싫어도 제때 제대로 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다소 무거운 이야기일 수 있지만, 법이 그렇게 정하고 있다는 점을 소개드린 것이니 양해 바랍니다.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