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초 주요 사업장의 작년 성적표를 받아 든 포스코 경영진은 충격에 빠졌다. 포스코의 상징인 포항제철소가 1973년 설립 이후 51년 만에 처음 적자를 냈기 때문이다. 자동차용 강판 등 소품종 대량생산 체제를 갖춘 광양제철소와 달리 선재, 후판, 열연강판 등 다품종 소량생산 시스템인 포항제철소의 한계였다. 업계 관계자는 “향후 5년이 한국 철강산업의 존폐를 가를 ‘골든타임’이 될 것”이라며 “강도 높은 구조조정으로 저부가 제품은 줄이고 스페셜티(고부가가치 제품)를 확대하지 않으면 국내 철강업계 전체가 위기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TF가 제시한 구조조정 방향은 ‘선(先) 제품 고도화, 후(後) 감산·통폐합’이다. 특히 중국과 제품군이 겹치는 철근과 형강, 후판, 강판 등은 부가가치를 높여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TF 관계자는 “범용 제품(에틸렌)에서 품질 차별화가 불가능한 석유화학과 달리 기초 철강제품은 업그레이드를 통해 품질을 차별화할 수 있다”며 “시설 투자와 연구개발(R&D)이 수반되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철근 시장이 그렇다. 국내 철근업계 1, 2위인 현대제철과 동국제강은 값싼 중국산 철근 유입과 건설 경기 불황으로 고전하고 있다. 반면 일본제철과 JFE철강은 강도와 연성이 높은 초고층용 철근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고공행진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상당수 한국 건설업체가 초고층 빌딩을 지을 때는 일본산 제품을 쓴다”며 “후판은 고부가가치 선박인 액화천연가스(LNG)선·암모니아선에, 자동차 강판은 전기차 등에 쓰일 철강을 고도화해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스페셜티 제품 전환을 유도하기 위해 관련 시설 투자와 R&D에 나선 기업에 인센티브를 줄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국내 건설 및 선박 소재 기준을 높여 품질이 낮은 중국산이 국내에 발을 들여놓는 것을 막을 수도 있다.
정부는 이 과정에서 인수합병(M&A)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세제 혜택과 공정거래법상 담합 예외 적용 등을 검토하기로 했다. 기업 간 시설 통폐합을 협의할 수 있도록 중재자 역할도 한다.
기업별 구조조정 시나리오는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포스코는 경쟁력이 낮은 철근·선재 등을 감산하거나 다른 회사와 통폐합할 것이라는 예상이 업계에서 나온다. 현대제철은 고부가 자동차 강판 중심으로 재편하고, 동국제강은 형강 비중을 늘릴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별다른 기술이 없는 철근 중심 중견·중소기업 중에선 문을 닫는 곳도 나올 수 있다.
정부가 ‘철강상생펀드’를 조성해 철강 구조조정을 돕는 방안도 거론된다. 상대적으로 경쟁력 있는 기업이 펀드 자금을 활용해 ‘버티기’에 나선 기업들의 설비를 인수하는 방식이다. 중장기적 경쟁력을 위해 수소환원제철 개발도 지원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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