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년 10월 회장에 취임한 이재용 삼성그룹 회장은 그간의 사법 리스크를 털어내고, ‘초격차 삼성’의 도약을 본격화하고 있다. 삼성전자 주가는 13개월 만(2025년 8월 19일 기준)에 다시 ‘8만 전자’를 회복하며 반등에 성공했다.
삼성은 글로벌 시장에서 입지를 재확인하며, 미래 성장 기업으로서의 면모를 강화하고 있다. 특히 최근 인공지능(AI) 추론 확대로 삼성전자가 주력하는 범용 메모리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반도체 부문 실적 회복과 더불어 AI·바이오 등 신사업에 대한 공격적 투자가 결실을 맺고 있다는 평가다.
지난 9월 열린 '삼성 AI 포럼 2025'에서는 AI 분야에서의 연구 성과를 공개하며, 글로벌 AI 리더십을 더욱 공고히 했다. 여기에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위치한 파운드리 공장에 370억 달러를 투자해 AI 칩 생산 역량을 확대하고 있다. 이 공장에서 내년 말부터 테슬라의 차세대 AI6 칩을 생산할 예정이다.

취임 직후 미래 먹거리 투자에 역점
이는 이 회장이 취임 당시 강조한 '인재와 기술' 철학과 맞닿아 있다. 그는 “창업 이래 가장 중시한 가치는 인재와 기술”이라고 밝히며, 이를 삼성의 경영 기조로 삼았다. 취임 직후 미래 신사업에 대한 투자와 혁신 의지를 분명히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2022년 5월 삼성은 시스템 반도체, 바이오, 신성장 IT(AI·차세대 통신)를 축으로 한 450조 원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2023년 3월에는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60조원 투자를 추가했다.
협력업체만 1만여 곳에 이르는 거대한 생태계를 이끄는 삼성은 ‘협력사의 경쟁력이 곧 삼성의 경쟁력’이라는 신념 아래 동반 성장의 길을 강조해 왔다. 이 회장은 "같이 나누고 함께 성장하는 것이 세계 최고를 향한 길"이라는 철학을 분명히 했다.
지역 투자를 통해 삼성은 국내 중소기업들과 함께 성장하는 산업 생태계 육성에 힘쓰고 있다. 첨단 산업을 특정 지역에만 몰아주지 않고 전국 단위로 육성해, 향후 충청·경상·호남 지역 등에서 반도체 패키지, 최첨단 디스플레이, 차세대 배터리 등 주요 신사업 분야를 키워 나간다는 계획이다.
다양한 분야의 혁신 기술을 중소기업에 제공함으로써 제조 역량을 업그레이드하는 삼성전자의 '스마트 공장'이 대표적인 상생 모델로 꼽힌다. 그 외에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지원, 차세대 선행기술 지원, 기술 개발 및 설비투자 저금리 대출 지원, 상생협력 아카데미를 통한 인재 육성 지원 등 중소 협력업체들을 대상으로 상생 영역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준법경영·이사회 중심의 경영 정착
삼성의 변화는 지배구조와 이사회 운영에서도 두드러진다. 이 회장은 '법과 윤리 준수'를 삼성전자 제1의 경영 원칙으로 삼고, 준법경영을 기업 체질로 정착시키고 있다. 이를 위해 최고경영자(CEO) 직속 조직인 전사 컴플라이언스팀을 운영하고, 준법지원인(CCO)이 이사회 및 경영위원회에 참석해 회사의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있다.
삼성은 법규 위반과 부정 행위에 대한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사전예방, 모니터링, 사후관리로 이어지는 3단계 프로세스를 마련했으며,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임직원 준법 의식을 강화하고 있다. 2020년에는 국내외 부패 방지 법규를 준수하고 윤리적으로 사업을 하겠다는 의지를 담아 '2020년 글로벌 반부패 및 뇌물 방지' 정책을 개정하고, 임직원을 대상으로 준법실천서약식을 진행했다.
같은 해 2월, 삼성은 7개 주요 관계사의 준법 감시 및 통제 기능을 강화하고자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준법감시위원회(준감위)를 출범시켰다. 준감위는 법률, 회계, 행정 등 준법 감시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있는 위원들이 참여해 실질적 견제와 감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삼성은 이사회 중심의 책임경영을 제도적으로 확립해 왔다. 사외이사 이사회 의장 선임, 선임사외이사 제도 등 두 가지 표준 모델을 도입해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지배구조를 구축하고자 했다.
먼저 2018년 3월 이사회 결의를 통해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하고, 2020년 2월 사외이사를 의장으로 선임했다. 2017년 4월에는 기존 CSR위원회를 확대 개편해 전원 사외이사로 구성된 지속가능경영위원회를 출범시켰다. 또한 전원 사외이사로 구성된 사외이사추천위원회 역시 전문성과 다양성을 갖춘 후보를 추천하도록 운영하고 있다.
삼성은 사외이사들이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서 법률, 회계 등 외부 전문가의 조언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국내외 현장 방문과 경영 현황 보고를 정례화해 이사회 운영의 투명성과 독립성을 높여 가고 있다. ‘2025 베스트 오너십’ 평가에서도 이러한 준법경영과 이사회 중심 경영 체계가 높은 점수를 받은 배경으로 분석된다.
기술 인재 중시, 제조 경쟁력의 근간
이 회장은 기술 인재 양성을 통한 제조 경쟁력 강화에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쏟고 있다. 이 회장은 “삼성이 앞장서서 우수 기술 인력이 존중받는 문화를 만들어야 기업도 성장하고 국가도 발전할 수 있다”며, “사회공헌의 일환으로 우수 기술 인재를 양성하고 이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자”고 제안했다.
삼성은 현재 국내 기업 가운데 유일하게 ‘국제기능올림픽 최상위 타이틀 후원사’로, 2007년부터 18년간 9개 대회를 연속 후원하며 글로벌 기술 인재 양성에 기여해 왔다. 이 밖에 전국기능경기대회 후원과 우수 고졸 인재 특별채용 등을 통해 청년 기술인들의 성장 경로를 넓히고 있다.
삼성전자는 생산기술연구소 내에 ‘삼성전자 국가대표 훈련센터’를 마련해 산업기계, 모바일 로보틱스 등 직종별 첨단 훈련 장비를 갖추고 최적화된 교육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2007년부터 2023년까지 삼성전자·전기·디스플레이 등 계열사에서 채용한 고졸 기술 인재는 1600여 명에 달한다.
또한 2019년부터는 분야별 핵심 기술 전문가를 발굴·예우하는 ‘삼성 명장’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2025년까지 총 69명의 명장이 선정됐으며, 올해는 삼성중공업에서 처음으로 선박·해양플랜트 분야 명장이 탄생했다. 명장으로 선정된 직원들에게는 격려금, 명장 수당, 정년 이후 계속 근무할 수 있는 ‘삼성 시니어트랙’ 우선 선발 기회 등 다양한 혜택이 주어진다. 이들은 회사 내에서 후배들의 롤모델로서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전장 사업 성과 본격화
이 회장은 가파른 시장 성장이 예상되는 차량용 전장 사업을 일찍부터 미래 먹거리고 낙점하고, 직접 사업을 진두지휘하며 초격차 경쟁력 확보에 나서고 있다.
2016년 이 회장 주도로 인수한 하만은 인수 첫 해인 2017년 600억 원 수준의 영업이익에서, 2023년에는 1조1700억 원, 2024년에는 1조3000억 원의 영업이익으로 성장세를 본격화했다.

삼성은 삼성전자, 삼성전기, 삼성SDI, 삼성디스플레이 등 계열사 역량을 총 집결해 전장 사업의 초격차 경쟁력 확보에 나서고 있다.
삼성전자는 2024년 9월 업계 최초로 8세대 V낸드를 적용한 PCIe 4.0 차량용 SSD AM9C1 개발을 완료하고, 글로벌 자율주행 업체들과 협력을 통해 시장을 선도해 나갈 예정이다. 같은 해 8월에는 퀄컴의 프리미엄 차량용 플랫폼인 '스냅드래곤 디지털 섀시' 솔루션에 탑재되는 차량용 메모리 LPDDR4X에 대한 인증을 획득하며 본격적인 제품 공급을 시작했다.
삼성전기는 전장용 MLCC 사업을 집중 육성하고 있다. 1988년부터 적층세라믹커패시터(MLCC)를 개발·생산해 온 삼성전기는 전기차, 자율주행 기술 발달로 인해 성장 중인 전장용 MLCC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2018년 중국 텐진에 MLCC 2공장을 건설했다. 시장조사기관 TSR에 따르면 전장 MLCC 시장은 2023년 4조 원에서 2028년 9조5000억 원 규모로 크게 성장할 전망이다.
이 회장은 부산, 톈진, 수원, 필리핀 등 삼성전기 사업장을 수시로 찾아, 사업 현황을 점검하고 고부가 MLCC 시장 선점을 독려하고 있다.
또한 글로벌 자동차 업계 CEO와 만나 사업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 회장은 2022년 12월 올리버 집세 BMW CEO를 만나 고성능 전기차 배터리를 포함한 양사 협력 확대를 논의한 바 있다.
이를 통해 삼성SDI는 BMW의 친환경 전기차에 고성능 배터리를 공급하고 있으며, 삼성디스플레이는 업계 최초로 개발한 차량용 원형 유기발광다디오드(OLED)를 BMW 미니(MINI)의 신차에 독점 공급할 수 있었다.

바이오 사업 최대 실적 경신
이 회장은 불확실성이 컸던 바이오 사업 진출을 과감하게 결단하고, 전폭적인 투자를 통해 바이오를 삼성의 핵심 성장 동력으로 키워냈다. 삼성은 2010년 바이오를 미래 신수종 사업으로 선정한 뒤, 2011년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설립해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24년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 최초로 연간 누적 매출액 4조 원을 돌파(4조5400억 원)했으며, 영업이익은 1조32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18.5% 증가했다. 삼성바이오에피스 또한 2024년 연간 매출 1조5300억 원, 영업이익 4300억 원을 기록하며 지속적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2025년 상반기에는 연결기준 매출 2조5882억 원, 영업이익 9623억 원으로 각각 전년 동기 대비 23%, 46.7% 상승했다. 9월 15일 기준 연간 누적 수주 5조2435억 원으로, 이미 지난해 전체 수주금액(5조4035억 원)에 육박하는 수준을 기록했다.
글로벌 톱20 제약 업체 중 17개사를 고객사로 둔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급증하는 수요에 차질없이 대응하고 생산능력 초격차를 확보하기 위해 현재 5공장(생산능력 18만 리터)을 건설하고 있다. 올해 5공장까지 완성되면 총생산능력은 약 78만4000리터로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하게 된다.
바이오 업계에서는 이 회장의 선제적 투자 결단과 지속적 지원 덕분에 삼성 바이오 사업이 가파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고 평가한다. 이 회장은 풍부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바이오 분야에서도 '제2반도체 신화'의 토대를 마련하고 있다.
2023년에는 세계 최대 바이오클러스터인 미국 동부에서 호아킨 두아토 J&J CEO, 크리스토퍼 비에바허 바이오젠 CEO 등 글로벌 바이오 리더들과 연쇄 회동하며 전략적 파트너십을 확대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라이프사이언스펀드'를 조성해 미래 기술에 선제 투자하고 국내 바이오 생태계 활성화에도 기여하고 있다. 라이프사이언스펀드는 삼성물산, 삼성바이오로직스,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조성한 2400억 원 규모의 펀드로, 유망한 바이오 기술 기업의 지분 투자에 참여하고 있다.

매년 1000억 원, 산학 협력 적극 늘려
삼성은 국가 기초과학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이 회장의 뜻에 따라 산학협력에 매년 1000억 원 이상을 투자하고 있다.
삼성은 미래 기술과 인재 양성을 위해 국내 7개 대학과 계약학과를 운영하며 국가 연구개발(R&D) 역량 강화에 기여하고 있다. 2029년에는 국내에서만 매년 450명의 반도체 전문 인재가 배출될 예정이다. 삼성전자는 2006년 성균관대를 시작으로 2021년 연세대, 2022년 카이스트, 2023년 포항공대·울산과기원·대구과기원·광주과기원과 협력했다.
또한 청년들의 소프트웨어 경쟁력 강화를 지원하기 위해 무상으로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는 '삼성청년SW·AI아카데미(SSAFY)'를 서울, 대전, 광주, 구미, 부산 등 전국 5개 캠퍼스에서 운영하고 있다. 2019년부터 현재까지 SSAFY 수료생 가운데 8000여 명이 국내외 기업 2000여 곳에 취업했다.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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