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싱가포르는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국가신용등급 평가에서 최고 등급인 AAA를 받고 있는 11개국 중 하나다. 미국보다도 신용등급이 높다. 올 2분기 경제성장률은 전년 동기 대비 4.4%였다. 한국(0.6%)과 비교가 안 된다.
싱가포르가 국가부채 비율이 높은데도 우량한 신용등급과 함께 탄탄한 경제 성장세를 유지하는 것은 빌린 돈을 알뜰하게 쓰기 때문이다. 싱가포르는 국채로 조달한 돈을 구멍 난 나라 살림을 메우는 데 쓰는 것이 아니라 더 큰 돈을 벌기 위한 종잣돈으로 활용한다. 중앙은행인 싱가포르통화청(MAS)과 국부펀드 테마섹이 세계 각국의 우량 자산에 투자해 수익을 낸다. 정부 부채가 국부펀드의 자산이 되니 순부채는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많지 않다.
문제는 빌린 돈을 어디에 썼느냐였다. 아르헨티나는 모든 학생에게 노트북을 무료로 지급하는가 하면 연금 수급자를 단기간에 두 배 이상으로 늘렸다. 베네수엘라는 무상교육, 무상의료 등을 하느라 정부 지출이 GDP의 40%를 넘었다. 그리스는 연금 지출만 GDP의 14%에 이르렀다. 빌린 돈으로 씨앗을 심지 않고 먹고 노는 데 쓴다면 빚은 그냥 빚으로 남는다. 최근엔 프랑스가 과도한 정부 지출로 휘청거린다. 프랑스의 GDP 대비 복지 지출은 2022년 기준 31.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국가부채가 늘어나는 과정에서 외국인의 국채 보유 비중이 높아진다는 점도 잠재적 위험 요인이다. 대내외 환경이 불안할 때 외국인 자본이 일시에 빠져나가면서 금융위기에 빠질 수 있다.
하지만 케인스가 무작정 돈을 풀라고 한 것은 아니다. 경기가 침체했을 땐 부양책을 쓰되 경기가 회복된 다음에는 풀었던 돈을 거둬들이라는 것이 케인스 경제학이다. 신케인스학파 경제학자로서 1977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제임스 미드는 “경제가 좋을 땐 큰 폭의 재정 흑자를, 경제가 나쁠 땐 작은 폭의 흑자 또는 적자를 내야 한다”고 설명했다. 경기 부양을 위해 정부가 재정적자를 내고 빚을 지는 것은 어디까지나 임시적 조치여야 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 2017년까지 70년간 쌓인 국가채무가 660조원이었다. 이후 8년 만에 642조원이 더 쌓였다. 70년 치 빚을 8년 만에 진 것은 무엇으로 정당화할 수 있을까. 씨앗을 더 빌려야 한다면 그동안 빌린 씨앗은 다 어디로 간 걸까.유승호 경제교육연구소 기자 us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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