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화하려는 노력에도 모두가 같이 동참하지 않으면, 변화 자체가 쉽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업무량이나 회사의 일정,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기검열을 하게 됩니다. 특히 관계 지향적인 조직에서는 사원들끼리 형, 동생 하는 사이가 되어 부탁을 거절하기 어렵고 눈치를 보게 됩니다.
이제 지난번 사례와 달리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온 콘테스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어느 금융회사에서 전 직원을 대상으로 '세상을 바꿀 만한 금융 상품 콘테스트'를 열었습니다. 더 좋은 아이디어들을 모으기 위해 자발적으로 4인 1조의 팀을 구성해 상품을 기획하기로 했습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있겠습니까만, 제로 콜라가 오리지널을 대체하는 세상이니 많은 사람이 기대를 겁니다. 우승한 금융 상품은 회사 차원에서 전략 상품으로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시상 규모도 크고, 특별 휴가에 특전도 많습니다.
드디어 콘테스트 날이 왔습니다. 각 팀에서 한 달간 연구한, '세상을 바꿀 만한' 상품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을 합니다. '100년 만기 장기채권 펀드', '배드 컴퍼니 주식형펀드' 등 예상외로 참신한 상품이 많습니다. 그렇게 해서 1, 2, 3등이 뽑혔습니다. 모두 기대가 큽니다.
통상 이런 콘테스트를 하면 참신한 아이디어는 젊은 직원들이 내고 고참 선배들은 거의 관여하지 않습니다. 귀찮기 때문이지요. 본인의 일이 아닌 가욋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4인 1조로 팀을 구성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부장이나 팀장급 1명, 중·고참 1명, 젊은 직원 2명과 같은 식으로 구성되지요. 처음엔 젊은 사원들이 아이디어를 내고 기획안을 만듭니다. 중간 고참이 리뷰하면서 상품을 다듬습니다. 마지막 단계에 가면 그제야 팀장급 선배가 최종적으로 상품의 타당성이나 시장성을 점검합니다.
문제는 이들은 자신들이 기획한 상품 안이 선정될 줄 몰랐던 겁니다. 막상 상을 받고 나니, 상금과 상품은 달콤한데 시간이 지날수록 난감해집니다. 괜히 상을 받았다 싶은 거지요. 상품 하나 만드는 게 얼마나 어려운데 이걸 어떻게 만들어야 하나? 부질없이 아이디어를 낸 젊은 후배를 원망하기도 합니다. 쓸데없이 일을 크게 벌여 놓았다고요.

매너리즘에 빠진 조직일수록 신상품 출시는 없습니다. 만들던 상품과 비슷한 유형의 상품은 큰 고민 없이 붕어빵 찍듯 만들면 되지요. 새로운 유형의 상품, 이를테면 '세상을 바꿀 만한' 상품은 엄두도 못 냅니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그때부터는 '어떻게 상품 만들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상품을 안 만들지'를 고민합니다. 일상화된 매너리즘은 자기검열을 촉발합니다. 결국 아이디어를 냈던 젊은 직원들도 후회하며 자기검열의 대열에 합류합니다. 마침내 상품을 '만들 수 없는' 그럴듯한 이유를 찾아내고, 잘 합리화된 사유로 '세상을 바꿀 만한 상품'은 세상에 나오지도 못하게 됩니다.
이런 비슷한 사례는 주변에 생각보다 많습니다. 처음에 참신한 아이디어를 낸 직원은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요? 그냥 자기검열의 흐름에 동화되었을까요? 그리고 후배 직원들은 선배들로부터 무엇을 배울까요? 세상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다고 생각할까요?
저는 '질러라!'라는 표현을 자주 씁니다. 어떻게 보면 무책임해 보이고, 한편으로는 용기 있어 보입니다. 자기 검열이 만연한 조직일수록 '지르지' 못합니다. 지르면 피곤하기 때문이죠.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다 사고가 나면 어쩌나요? 사고가 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업은 그렇게 부실한 조직이 아닙니다.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리스크 부서가 있고, 컴플라이언스 담당 부서가 있습니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을 못 담가서야 되겠습니까?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그런 조직은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 분명히 망할 조직입니다. 서서히 없어지든, 강한 바람에 한 번에 훅 가든, 결국 없어질 조직입니다. 본인의 인생을 그런 조직과 같이 가겠다고 생각한다면, 편하게 마음먹고 그렇게 사는 게 좋습니다. 그러나 나의 가치를 키우고, 나의 미래를 더욱 펼치고 싶다면, 그런 조직 내에서라도, 나 혼자만이라도, 왕따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질러 보십시오. 언젠가 알아주는 사람이 나타날 겁니다. 만약 그래도 조직이 바뀌지 않고,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이 없다면, 그곳은 당신이 있을 자리가 아닙니다. 당신의 가치를 알아주는 곳으로 그때 가면 됩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이윤학 프리즘자산운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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