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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만에 나온 日천만영화 '국보' 이상일 감독 “변두리에 눈이 간다”

입력 2025-09-22 16:13   수정 2025-09-22 16:14



한때 “일본 영화의 흥행은 끝났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일본 영화계에 번졌다. 박스오피스는 어느새 애니메이션이 점령했고, 실사영화가 자취를 감추며 극장은 다양성과 활력을 잃었다. 이웃인 한국영화는 ‘르네상스’라 불릴 만큼 무섭게 발전하던 때라 “한국영화를 배워야 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요즘 분위기는 다르다. 젊은 얼굴들이 등장한 일본 영화의 기세가 매섭다. 하마구치 류스케, 미야케 쇼, 하야카와 치에 같은 감독들이 두각을 드러내며 글로벌 영화시장이 다시금 일본의 미학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다.

최근 일본 내수 영화시장에서도 의미 있는 사건이 발생했다. ‘춤추는 대수사선 2’ 이후 실사영화로는 22년 만에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가 탄생했다. 주인공은 재일 한국인 3세인 이상일 감독의 영화 ‘국보’. 화들짝 놀란 일본 영화계는 내년 3월 열릴 미국 아카데미시상식(오스카상) 국제장편영화상 부문에 나설 일본 후보작에 이 작품을 선정했다. 한국 후보작인 박찬욱의 ‘어쩔수가없다’와 맞붙게 됐다.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했는지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도 ‘국보’를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으는 작품을 소개하는 갈라프레젠이션 섹션에 초청해 영화를 선보였다.



어떤 영화길래 숨죽여 있던 일본 극장이 열광하는 걸까. 지난 21일 부산 우동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나선 이 감독은 서툰 한국어로 “상상도 못 했다”며 “천만 명의 이유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오히려 흥행을 기대하지도 않았다는 솔직한 속내도 털어놨다. 그는 “가부키는 영화관이 아니라 극장에서 실제로 봐야 한다는 인식도 있고, 러닝타임도 3시간 정도라 흥행을 기대하기엔 어려운 조건이었다”라고 말했다.

‘국보’는 이 감독이 말한 대로 가부키를 소재로 한 영화다. 일본 작가 요시다 슈이치의 동명 베스트셀러 소설이 원작으로 일본 전통문화인 가부키 세계에서 살아가는 예인(藝人)의 환희와 비애를 그렸다. 야쿠자 두목이던 아버지의 예기치 못한 죽음으로 가부키 명문가에 편입된 주인공 기쿠오(요시자와 료)가 가부키 예술가로서 마침내 ‘국보’ 반열에 오르는 일생을 그린다. 이 과정에서 평생의 친구이자 가부키 라이벌 슌스케(요코하마 류세이)와 솟구치는 우정과 질투, 연민과 애증, 갈등과 화해는 영화에 깊이를 더한다.

흥행의 이유를 모르겠다고 손사래 친 이 감독의 입에서 영화의 흥행 이유가 명징하게 드러났다. 이 감독은 이날 ‘국보’에 대해 “예술가의 정체성을 찾아가며 얻는 것과 잃는 것지 무엇인지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그는 “각자의 업(業)을 짊어진 이들이 예술가로 살아가며 정체성을 찾아간다”면서 “고도의 예술을 추구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만이 볼 수 있는 풍경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풍경을 영화를 통해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말헀다.



올해 상반기 국내 극장가에서 화제를 모은 김형주 감독의 영화 ‘승부’나, 조셉 코신스키 감독의 ‘F1: 더 무비’와 비슷한 맥락이다. 두 영화 모두 바둑이나 F1 레이싱에 대해 잘 모르는 대중을 극장으로 끌어모았다. 영화가 바둑과 레이싱이 아닌 인간적인 고민, 사람 사이의 관계가 만드는 드라마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예컨대 ‘승부’는 조훈현과 이창호라는 두 천재의 대결이라는 틀 안에 삶을 대하는 태도를 묻는다. ‘국보’에서도 이런 맥락이 잘 드러난다. 이 감독은 “저를 포함해 모두가 걸을 수 있는 인생은 아니지만, 그런 삶에서 우리는 감동하게 된다”고 말했다.

재능을 가진 기쿠오와 혈통을 가진 슌스케의 감정에 불이 붙는 서사가 특히 눈길이 간다. 기쿠오는 역대급 재능을 가졌지만, 세습 전통이라는 벽에 부딪힌다. 그는 “너의 피를 원한다”고 할 정도로 슌스케를 질투하고 좌절한다. 반면 자신을 압도하는 재능을 보여주는 슌스케에게 핏줄은 어쩌면 저주에 불과하다. 이 서사에 몰입되는 건 이 감독의 정체성이 주는 영향도 크다. 재일한국인으로 학창시절을 조선학교에서 보낸 후 일본 영화계의 아웃사이더로 시작해 일본이 인정하는 감독으로 자리매김했다는 점에서다.

이 감독은 재일 한국인의 정체성이 영화에 투영됐는지를 묻는 질문에 “구체적인 연관성은 관객의 상상에 맡기고 싶다”고 말을 아끼면서도 “계속해서 사회 변두리에 있는 사람에 눈이 가는 것은 사실이고, 그건 제 정체성이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서사를 뒷받침하는 탐미적 연출도 돋보인다. ‘국보’는 ‘킬빌’에 참여한 타네다 요헤이와 ‘가장 따뜻한 색, 블루’의 촬영 감독인 엘 파가 각각 미술과 촬영감독으로 참여해 화려한 가부키 무대를 스크린에 옮겼다. 주연인 요시자와 료는 영화 촬영 1년 전부터 가부키를 연습하며 감정을 실은 춤을 재현하는 데 매달렸다고 한다. 이 감독은 “선입견이 없는 외국인의 시선에선 가부키가 어떻게 보일지 궁금했다”며 “새로운 아름다움을 포착하길 바랐다”고 했다. 그러면서 “훌륭한 배우들이 인생을 걸고 도전한 작품이라 관객들이 여기에서도 매력을 느낀 것 같다”고 덧붙였다.

‘국보’는 이번 영화제에서 가장 예매 경쟁이 치열한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국내 극장에는 하반기 개봉할 예정이다. 영화 GV(관객과의 대화) 등을 통해 국내 관객과 만난 이 감독은 “한국 관객들이 날카로운 질문을 많이 하더라”며 “적극적이고 진지하게 영화를 봐주셨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고 말했다.

부산=유승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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