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엔화의 각국 통화 대비 가치 하락세가 뚜렷하다. 엔화 가치는 스위스 프랑 대비 사상 최저치를 경신했고, 유로화 대비로도 최저치가 임박했다. 마이너스로 떨어진 일본의 실질금리에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그 배경이다. 글로벌 헤지펀드 등이 지난해 상반기까지 엔저를 가속한 ‘엔 캐리 트레이드’를 재개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23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엔·프랑 환율은 지난 18일 한때 프랑당 187엔대까지 상승(엔화 가치 하락)하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9월 들어 경신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유로 대비로도 마찬가지다. 19일 외환시장에서 엔·유로 환율은 유로당 174엔대 중반까지 오르며 작년 7월 기록한 사상 최고치(175엔대 중반)를 눈앞에 뒀다.
엔화 가치는 영국 파운드, 브라질 헤알, 멕시코 페소 대비로도 연중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유일하게 달러 대비로만 보합권이다. 달러가 연내 미국 기준금리 인하 전망으로 약세를 보여서다. 니혼게이자이는 “달러 대비 엔화는 보합권을 유지하고 있지만, 달러를 제외한 여러 통화 대비로는 하락세가 멈추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엔화 매도 압력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이 엔 캐리 트레이드다. 엔 캐리 트레이드는 금리가 낮은 엔화를 조달한 뒤 팔고,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통화를 사서 차익을 노리는 거래 기법이다. 지난해 7월 엔·달러 환율이 37년여 만에 달러당 161엔대 후반까지 치솟았던 역사적 엔저의 원인이었다. 지난해 7월 말 일본은행의 추가 기준금리 인상을 계기로 엔 매도 포지션이 단번에 해소됐고, 이후 엔 캐리 트레이드는 모습을 감췄다.
그러나 최근 들어 엔 캐리 트레이드가 다시 인기를 얻고 있다. 이를 보여주는 지표 중 하나가 외국은행 일본지점이 본국 본점 등에 얼마나 송금했는지를 나타내는 ‘본-지점 계정’이다. 일본은행 통계에 따르면 올해 1~7월에 월평균 12조7178억엔까지 증가하며 2008년(14조1361억엔) 이후 최대 수준을 기록했다.
엔 매도 압력으로 작용하는 일본의 실질금리는 하락세다. 기준금리에 물가 상승률을 반영한 일본의 실질금리는 -2.2%로 떨어졌다. 정치적 불확실성도 여전하다. 사실상 차기 총리를 뽑는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 이후 정국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누가 이기더라도 자민당이 소수 여당인 상황에선 ‘재정 확장’을 요구하는 야당과 손을 잡을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엔화 매도 이유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일본은행의 기준금리 추가 인상 관측이 강해지면 엔화 매도에 역풍이 될 전망이다. 시장에서는 일본은행이 빠르면 10월 기준금리 추가 인상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일본은행이 실질금리 마이너스 폭을 크게 줄이는 수준으로 기준금리를 올리지 않는 한 엔저는 지속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도쿄=김일규 특파원 black04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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