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를 인수합병(M&A)에 활용하려던 B제조업체에도 비상이 걸렸다. 자사주 비중이 32%인 이 회사는 주가 방어와 유동성 확보를 목적으로 자사주를 꾸준히 매입해왔다. B사는 “자사주 소각이 강제화되면 회사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에 따르면 법 시행 후 국내 상장사들이 소각해야 하는 자사주는 총 72조원어치에 달한다.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는 63조6000억원, 코스닥 상장사는 8조1000억원 규모다. 상반기 기준 전체 자사주(76조9000억원) 중 주가 부양 목적으로 매년 자진 소각하는 물량(4조2000억원)과 임직원 보상용 보관 물량(1조원)을 제외한 나머지다.
자사주 의무 소각이 단기적으로는 증시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란 게 증권가 설명이다. 자본금이 변하지 않은 가운데 주식 수가 감소해 주당 가치가 올라가서다. 주당순이익(EPS)과 주당순자산가치(BPS)가 높아지는 효과도 있다. 최우식 브라이트자산운용 대표는 “미국 기업들은 이익의 80% 정도를 자사주 소각과 배당에 쓰지만 한국은 40% 수준”이라며 “이번 개정안이 ‘한국 기업도 주주가치를 중시한다’는 인식을 글로벌 투자자에게 심어줄 수 있다”고 말했다.
소각 규모 72조원은 지난해 국내 1000대 기업 연구개발(R&D) 투자액(83조6000억원)의 90%에 달하는 수치다. SK하이닉스는 자사주가 전체 발행 주식의 2.4%(약 6조2000억원)에 달한다. 2년 치 R&D 비용(약 3조원)에 해당하는 ‘비상금’을 주가 부양을 위해 뿌리는 셈이다.
경영권 방어에도 균열이 생길 수 있다.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지만 우호 세력에 넘기면 되살아난다. 헤지펀드들이 국내 기업을 공격할 때 자사주 소각을 요구해온 배경이다.
자사주 소각이 의무화되면 행동주의 펀드 공세는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현재 571개인 ‘경영권 위협 가능 상장사’(최대주주·우호지분 30% 미만)가 자사주 소각 이후엔 707개로 급증할 것으로 분석했다. 김명선 상장협 경제조사팀장은 “자사주로 차입금을 상환하면 부채비율이 8%포인트 낮아지지만 소각하면 이런 효과가 사라진다”며 “장기적으로 주주환원 정책이 오히려 제약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황승택 하나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재무 상황이나 경영 여건이 다르기 때문에 자사주 소각 효과가 제각각일 것”이라며 “기업에 따라 주주가치 제고 기회 또는 성장을 제약하는 악재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