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간 글로벌 2000위에 포함된 중국과 한국 기업 수 변화다. 중국이 알리바바와 비야디(BYD) 등 혁신기업을 쏟아내는 동안 한국 기업은 세계 무대에서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몸집이 커질수록 정부 지원은 줄고, 규제만 늘어나는 한국 기업의 현실을 보여주는 수치라고 설명한다.대한상공회의소는 23일 미국 경제지 포브스의 통계를 분석해 발간한 ‘글로벌 2000대 기업의 변화로 본 한·미·중 기업 삼국지’ 보고서에서 이 같은 수치를 공개했다. 포브스는 시장 영향력, 재무 건전성, 수익성이 좋은 리딩 기업의 순위를 매긴 ‘포브스 글로벌 2000’을 매년 발표하고 있다.
대한상의 분석에 따르면 2000대 기업 중 미국 기업은 올해 612개로 10년 전인 2015년(575개)보다 37개 많아졌다. 중국 역시 같은 기간 180개에서 275개로 52% 급증했다. 반면 한국은 66개에서 62개로 오히려 줄었다. 2000대 기업 명단에서 지워진 한국 기업은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삼성중공업, 한국타이어, 아모레퍼시픽 등 모두 제조업이다.
기업 성장 속도에서도 차이가 났다. 글로벌 2000대 기업에 속한 한국 기업의 합산 매출액은 10년간 1조5000억달러에서 1조7000억달러(약 2372조원)로 15% 증가하는 데 그친 반면 중국은 4조달러에서 7조8000억달러(약 1경877조원)로 두 배 가까이로 뛰었다. 대한상의는 “중국의 간판 기업 성장 속도는 한국보다 6.3배 빨랐다”며 “중국이 빠르게 성장한 ‘신흥 강자’를 대거 배출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미국과 중국에서 성장을 이끈 것은 정보기술(IT) 기업이었다. 미국에선 마이크로소프트를 비롯한 기존 강자는 물론 에어비앤비, 도어대시, 블록 등 실리콘밸리 창업 생태계에 기반한 기업들이 명단에 올랐다. 중국은 파워차이나, 샤오미, 디디글로벌, 디지털차이나그룹 등 에너지와 제조업, IT를 포함한 다양한 산업군이 글로벌 2000위권에 새로 진입했다. 한국의 글로벌 톱 2000 기업은 첨단산업이 아니라 제조업과 금융업에 몰렸다.
대한상의는 “한국 산업 생태계는 기업이 성장할수록 지원은 줄어들고 규제만 늘어나는 구조”라며 “기업이 위험을 감수하며 성장할 유인이 적다”고 지적했다. 김영주 부산대 무역학부 교수가 조사한 결과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이 되면 규제가 94개로 늘고, 대기업으로 인식되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이 되면 343개로 불어난다.
대한상의는 이 같은 역진적 구조를 해소해 기업 성장을 촉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해를 끼치지 않는 선이면 규제하지 않는 실리콘밸리처럼 기업 활동의 족쇄를 걷어내야 미국, 중국 등과 동등한 환경에서 한국 기업이 경쟁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특정 지역 및 업종에 규제 메가샌드박스를 도입하거나 첨단전략산업법을 개정해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등 첨단산업에 한해서라도 규제 예외 조항을 넣어야 한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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