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미국 중심으로 이른바 '제로데이 옵션(0DTE)' 금융 상품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0DTE는 만기가 24시간도 되지 않은 초단기 파생상품이다. 글로벌 금융 시장에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하는 혁신적 상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작은 금융 위기가 발생할 경우에 금융 시스템 전체를 붕괴시킬 수 있는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0DTE란 'Zero Days to Expiration의 약어다. 만기일이 당일인 옵션을 의미한다. 매매하는 그날이 만기일로서 옵션의 시간가치가 빠르게 소멸하고 내재가치만 남는 것이 특징이다. 하루 만기 옵션이기 때문에 초단기 방향성 트레이딩, 뉴스 이벤트 베팅, 빠른 수익 회수, 리스크 관리 등의 목적에 적합하다. 수익률 극대화와 레버리지 효과를 활용할 수 있다.
0DTE 시장에는 세 종류의 핵심 참여자가 있다. 개인 투자자, 기관 투자가, 고빈도매매(HFT) 알고리즘이 얽혀 상호작용하는 복잡한 생태계다. 0DTE 거래량의 가장 큰 동력은 개인 투자자다. '시카고옵션거래소 글로벌 마켓'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달 'SPX 0DTE'(S&P500 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옵션) 거래량의 53%가 소액 개인 투자자들로부터 발생했다. 이들은 대부분 극히 낮은 확률로 매우 높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복권과 같은 보상' 구조를 보고 이 시장에 투자한다. 낮은 프리미엄으로 수백 배의 레버리지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 이들을 유인하는 핵심 요인이다.

하지만 현실이 녹록지 않다. 독일 뮌스터 대학의 관련 연구에 따르면 개인 투자자의 S&P500 옵션거래 중 무려 75%가 0DTE에 집중됐다. 이들은 거래에서 상당한 손실을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결제은행(BIS)의 보고서 '시장은 연착륙에 달려 있다(Markets count on a smooth landing)'에 따르면 0DTE 매수 전략은 연 환산 -3만2000%라는 천문학적 평균 손실률을 보였다. 드물게 성공할 경우 7만9000%까지 기록하는 극단적 분포를 보였다.
하이너 베크마이어 뮌스터 대학 교수는 "개인 투자자는 0DTE 옵션을 사랑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우리의 분석에 따르면 그들은 체계적으로 손실을 보고 있으며, 이는 복권 구매와 유사한 행태를 보인다. 특히 거래 비용이 전체 손실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고 지적했다.
기관 투자가는 주로 위험 회피 목적으로 해당 시장에 참가한다. 이들은 단기 변동성 위험을 정밀하게 관리하기 위해 0DTE를 효율적인 헤지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분석이다. 주로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 결정이나 주요 경제 지표 발표와 같은 특정 이벤트 전후로 관련 상품을 매입한다.
HFT 전문 회사는 이 시장의 핵심 인프라 역할을 한다. 시타델 증권, 버투 파이낸셜, 서스쿼해나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막대한 거래량 속에서 매수-매도 호가 차이를 통해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하는 유동성 공급자다. 동시에 이들은 주로 개인 투자자가 매수하는 옵션의 주된 매도자 역할도 수행한다.

이 시장은 단순한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는 의견도 나온다. 참여자 간의 공생적이면서도 불균형한 관계로 유지되는 복잡한 생태계라는 것이다. 개인 투자자는 복권과 같은 고위험 상품에 꾸준히 투자한다. 정교한 알고리즘을 갖춘 마켓메이커들은 이들이 지불하는 프리미엄을 안정적으로 수확할 기회를 얻는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마켓메이커의 수익은 이들이 시장에 막대한 유동성과 촘촘한 호가를 제공할 강력한 유인이 된다.
이런 풍부한 유동성은 대규모 헤지를 효율적으로 실행해야 하는 기관 투자가에게 여러 부수 혜택을 제공한다. 따라서 개인 투자자의 투기 열풍은 개별적으로는 손실이 날 수 있지만, 전체 0DTE 유동성 생태계를 유지하는 중요한 '연료' 역할을 한다. 만약 개인 투자자의 관심이 사라진다면 모든 시장 참여자의 거래 환경이 악화할 수 있다.
HFT 및 마켓메이커들 역시 변동성 장세의 특수를 누리고 있다. 미국 대표적인 HFT 겸 마켓메이커인 버투 파이낸셜은 2분기 실적발표에서 "유리한 시장 환경 덕에 분기 조정 순거래수입이 5억 68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50% 증가했다"고 밝혔다.

옵션 시장 점유율 1위 마켓메이커인 시타델 증권은 올 1분기 순 거래수익 34억 달러를 올리며 사상 최대 분기 실적을 기록했다. 분기 이익도 17억 달러로 1년 전보다 70% 급증했다. 이들은 시장 변동성 확대와 거래량 증가가 수익 급증의 주된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0DTE 시장 성장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0DTE가 금융 안정성을 위협할 수 있다는 주장의 핵심은 '딜러 헤지 루프'라는 메커니즘이다. 0DTE 옵션은 만기가 하루 미만으로 아주 짧기 때문에 가격이 조금만 움직여도 옵션 가격이 급격하게 변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에 따라 옵션거래를 중개하는 딜러들은 자신들의 손실 위험을 줄이기 위해 S&P500 선물을 팔아서 포지션을 중립으로 맞춰야 한다. 이때 시장이 조금만 흔들려도 매도해야 하는 선물의 양이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늘어난다. 즉, 시장의 작은 변화가 큰 매도 압력을 만들 수 있다.
이런 매도세는 다시 시장의 하락을 부추긴다. 이는 또다시 추가적인 선물 매도를 유발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할 수 있다. 이런 '피드백 루프'가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질 경우에 시장의 작은 하락이 대폭락으로 증폭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유럽중앙은행(ECB)도 "미국 0DTE 시장에서 발생하는 리스크는 글로벌 금융 시장의 상호연결성을 통해 유럽으로 전이될 수 있다"며 "이는 특정 국가의 문제가 아닌, 국제적인 금융 안정성의 과제"라고 지적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레버리지를 많이 사용하는 은행이 아닌 금융회사(NBFI)들은 시장이 갑자기 흔들릴 때 자신들이 가진 자산을 급하게 팔아 빚을 줄이려 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자산 가격이 더 빨리 내려갈 수 있고, 금융 시장 전체로 위험이 퍼져나갈 수 있다. 미국 금융 시장에서 가격이 갑자기 크게 조정될 경우 시장 질서가 완전히 무너지는 혼란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금융 감독 당국은 최근 급증한 0DTE 거래에서 나올 수 있는 위험에 대비하기로 했다. 미국 옵션청산공사(OCC)는 '장중 위험 가산 마진(IRC)'이라는 새로운 제도를 만들었다. 지난 2일부터 단계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다음 달 1일부턴 모든 회원사가 반드시 따라야 한다.

이 제도의 핵심 목적은 옵션을 거래하는 회사들이 장중에 갑자기 위험을 크게 늘릴 경우를 대비해 미리 돈을 담보로 받아놓겠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전 달의 매일 오전 11시에서 12시 30분 사이 가장 위험했던 순간의 평균값을 기준으로 추가로 낼 돈(마진)을 정한다. 만약 장중 마진이 발생하면 매일 정오쯤 추가 마진을 내라고 요청하고, 회원사들은 요청받은 뒤 1시간 안에 반드시 현금으로 돈을 내야 한다.
한국자본시장연구원이 한국예탁결제원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올 6월 말 기준 한국 투자자의 해외 상장 ETF 보유액 중 레버리지 및 인버스 상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43.2%에 달했다. 특히 국내에서는 판매가 금지된 3배 레버리지 상품의 비중이 22.2%에 이른다. 0DTE 문제가 더 이상 '강 건너 불'이 아니라는 뜻이다. 수십조 원에 달하는 한국 가계의 자산이 미국 금융시장의 급격한 변동성 이벤트에 직접적으로 노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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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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