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 보르도 와인의 세계적 명성은 1855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계기로 시작됐다. 행사 전 나폴레옹 3세는 와인의 품질을 ‘그랑 크뤼 클라세(Grand Cru Classé)’ 1등급부터 5등급까지 분류하여 발표했다. 표준화를 통해 보르도 와인의 유명세가 정착됐다.
그리고 23년이 지났다. 전통적 와인 강국인 동유럽 몰도바는 1878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금메달을 차지했다. ‘최고 와인’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는 물론 영국의 조지 5세와 빅토리아 여왕에게까지 와인을 진상할 수 있었다.
특히 1953년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즉위식에서 공식 만찬주로 채택돼 ‘여왕의 와인’이라는 별칭도 얻었다. 작년에는 디캔터(Decanter, 와인 전문매체) ‘아시아 와인 어워드’ 등에서 금메달을 휩쓸었다. 우리나라 대전시에서 열린 프랑스 와인과의 블라인드 테이스팅에서는 몰도바 와인이 1~3위를 휩쓸었다.
과연 몰도바 와인의 어떤 맛과 향이 이런 성공을 이끌었을까. 9월 초 서울 종로 소재 한 호텔에서 열린 ‘몰도바 와인 그랜드 테이스팅’에서 그 답을 찾았다. 이날 행사에는 국내 수입사 총 11곳 중 9개 업체가 참가했다.
먼저 대표 주자 격인 ‘네그루 드 푸카리(Negru de Purcari 2021)’부터 살펴본다. 일본 만화 ‘신의 물방울’에도 소개된 바 있는 이 와인은 첫 모금부터 낯설다. 풀보디에 상쾌한 느낌이 서유럽 와인과는 또 다른 분위기.
굳이 표현하자면 검은 과일과 자두, 무화과, 사과 향이 한데 어우러져 신비감을 연출한다. 시간이 지나자 짙은 초콜릿과 오크 향이 끝없이 밀려왔다. 마치 모닥불을 피워놓고 한잔하는 분위기다. 국제 품종인 카베르네 소비뇽(55%)과 사페라비(40%), 라라 네아그라(5%)를 섞어 양조했다. 프렌치 오크배럴 18개월 숙성.
다음은 ‘프리덤 블렌드(Freedom Blend 2020)’로 판매 수익금은 우크라이나 전쟁 난민 기금으로 사용된다. 이 와인은 원래 2011년 동유럽 3국이 러시아로부터의 독립 20주년을 기념해 만들어졌다. 세 나라 토착 품종 블렌드 비율은 라라 네아그라(몰도바) 20%, 사페라비(조지아) 65%, 바스타르도(우크라이나) 15%다.
가장 먼저 짙은 가넷 색상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잔을 기울여 흰 종이 위에 올려봤지만 바닥이 비치지 않았다. 대신 레드체리와 건포도의 신선미가 기분 좋게 스며들었다. 익숙하지 않은 지역 토착 품종 때문인지 이 또한 명확하게 표현하기 어렵다. ‘새로운 발견’을 기대한다면 직접 시음해볼 것을 권한다.
두 번째 잔에서는 말린 자두와 감초, 가죽 향의 풍미가 나타났다. 특이한 점은 부드럽고 우아한 벨벳의 긴 여운. 수입사가 권장하는 음용온도는 18~20도로 다소 높은 편이다. 두 종류 모두 차르와인이 수입한다. 이수호 대표는 몰도바 와인을 국내 최초로 수입, 소개한 주인공이다.
끝으로 4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 가족 경영 와이너리인 카사 비니콜라 루카(Casa Vinicola Luca)의 ‘카르페 디엠, 배드 보이스(Carpe diem, Bad Boys 2018)’. 강건한 스타일이 가장 먼저 다가왔다.
검은 자두, 블랙베리, 검은 체리 등 베리류 풍미가 가득하다. 농축미와 진한 부케가 함께 먹은 등심스테이크의 느끼함을 잡아주었다. 한 모금 삼키고 나서도 긴 여운이 이어진다. 몰도바를 상징하는 페테아스카 네아그라와 사페라비를 블렌드해 만들었다. 12개월 프렌치 오크 바리크 숙성.
WS통상은 이 와인을 포함해 페테아스카 알바(Feteasca Alba)와 팜 파탈(Femme Fatale), 페테아스카 네아그라(Feteasca Neagra) 등 모두 6개 종류를 수입·판매한다.
김동식 와인칼럼니스트
juju4333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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