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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묘지 값만 '4000만원' 충격…유족 울리는 '최후의 부동산' [글로벌 머니 X파일]

입력 2025-09-25 08:00   수정 2025-09-25 08:16



미국을 중심으로 장례 관련 비용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이른바 '데스플레이션(Death-flation)'이다. 거대 자본이 장례식장, 화장장, 묘지 등 생의 마지막에 필요한 인프라에 적극 투자하면서다.
3만 달러의 땅 한 평
25일 미국의 대표적인 조경형 공동묘지 중 하나인 뉴욕의 그린우드 공동묘지에 따르면 이곳의 단독 장지(싱글 그레이브) 가격은 2010년 1만9000달러에서 올해 최대 3만달러 이상까지 올랐다. 같은 기간의 미국 물가 상승률을 훨씬 뛰어넘는 수치다. 여기에 매장 작업비, 의무적으로 구매해야 하는 매장 용기 비용까지 더하면 총 1만달러의 추가 비용이 필요하다.

미국 노동통계국(BLS) 데이터에 따르면 1986년부터 2025년까지 약 40년간 장례비 관련 물가는 300% 이상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약 195%)보다 상승 폭이 컸다. 크레이튼 대학의 빅토리아 헤니맨 교수는 "9000달러가 평균 장례비라는 현실을 정상으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라며 "너무 충격적인 금액이고, 결코 그럴 필요가 없는 비용"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장례 비용 비용의 근본적인 원인은 공급의 비탄력성이다. 장례 서비스는 인력과 시설을 통해 공급을 조절할 수 있다. 하지만 대도시의 묘지는 사실상 공급이 고정된 희소 자원이다. 묘지는 독점적 성격을 지닌 부동산 자산이기도 하다. 일각에선 공급이 고정된 '최후의 부동산'이라고도 부른다.



다른 요인도 있다. 정보의 비대칭성이 대표적이다. 장례 산업은 가격 정보의 접근성은 낮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의 2023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250곳 이상의 장례식장 중 39곳이 전화로 가격 정보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았다. '수요의 비탄력성'의 영향도 있다. 장례 서비스는 소비자가 가장 취약한 상태에서 구매 결정을 내려야 하는 특수한 상품이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과 충격 속에서 유족들은 보통 2~3일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모든 것을 결정해야 한다.

사회적 체면과 고인에 대한 예우라는 압박까지 더해져 가격 민감도를 현저히 떨어뜨린다. 2022년 미국소비자연맹의 조사에 따르면 장례 준비하면서 두 곳 이상의 장례식장을 방문해 가격을 비교한 소비자는 5명 중 1명 정도였다.
사모펀드는 왜 장례식장을 사들이는가?
이런 '시장 실패'는 사모펀드에 최적의 활동 무대를 제공한다. 정교한 영업 교육을 통해 슬픔에 잠긴 유족에게 더 비싼 관이나 불필요한 서비스를 권유하는 일명 '업셀링(upselling)'을 시도할 수 있다. 여러 서비스를 묶어 개별 가격을 파악하기 어렵게 만드는 '패키지' 상품을 주력으로 판매하기도 한다.

사모펀드가 이 시장에 주목하는 다른 이유도 있다. 우선 인구 통계학적으로 확실한 수익을 확보할 수 있다. 베이비붐 세대가 노년기에 접어들면서 향후 수십 년간 사망자 수는 꾸준히 증가할 것이다. 미국에서만 사망자 수가 오는 2045년까지 연간 약 391만 명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경기 방어적 특성도 있다. 죽음은 경제 호황이나 불황과 무관하게 발생하는 필연적인 사건이다. 장례 산업은 경기 변동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장례 산업이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창출할 수 있는 이유다.

사모펀드는 시장의 파편성에도 주목한다. 미국에서는 전체 장례식장의 70% 이상이 가족 소유의 독립 사업체로 운영되고 있다. 이런 파편화된 시장은 '롤업' 전략을 구사하기에 최적의 환경이다. 롤업 전략이란 다수의 소규모 기업을 인수·합병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는 것을 뜻한다.



유럽 장례서비스 기업 푸네캅 그룹의 티에리 지세로 최고경영자(CEO)는 "장례 산업은 하나의 인프라 산업"이라며 "사람은 결국 모두 죽기 때문에 캐시플로우가 예측할 수 있고, 고령화로 향후 수요가 늘어나 인프라 투자처로 손색없다"고 설명했다.

미국 최대 장례·묘지업체 SCI가 대표적이다. SCI는 사모펀드는 아니지만 공격적인 인수합병 전략은 업계의 '교과서'로 통한다. SCI는 수십 년에 걸쳐 수많은 독립 장례식장과 묘지를 인수하며 북미 최대의 '죽음 제국'을 건설했다. 올 3월 기준 SCI는 북미 전역에 장례식장 1489곳과 공동묘지 496곳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장례식장 26곳과 묘지 6곳 인수에 1억 8100만 달러를 투입했다.

SCI의 이런 사업 모델은 수익성을 입증했다. 2분기 조정 주당순이익(EPS)은 0.88달러로 전년 동기(0.79달러) 대비 11% 성장했다. 톰 라이언 CEO는 실적 발표에서 "더 높은 장례 매출과 효과적인 고정 비용 관리로 장례 총이익에서 14.8%의 성장을 이끌었다"고 말했다.

업계는 SCI의 선판매 사업 모델에 주목한다. 미래의 장례 서비스를 미리 판매해 막대한 현금을 확보하는 전략이다. 작년 말 기준 SCI의 선판매 미이행 잔고는 160억 달러에 달했다. 이는 미래 고객을 선점하는 것을 넘어, 막대한 자금을 운용해 추가적인 금융 수익을 창출하는 비즈니스 모델이다.

글로벌 사모펀드 운용사 TPG 캐피탈은 2023년 호주 최대 장례 서비스 기업인 인보케어를 11억 8000만 달러에 인수했다. TPG 캐피탈은 인수 직후 인보케어를 비상장사로 전환했다. 영국에서도 2023년 장례 업계 2위인 디그니티가 투자자 컨소시엄에 2억 8100만 파운드에 인수되어 비상장 회사로 전환됐다.유럽에서 가장 공격적인 롤업 전략을 펼치고 있다. 이 기업은 120건 이상의 M&A에 나섰다. 지난 5월엔 이탈리아의 'RVN 아르브우엔 오노란체 푸네브리'를 추가 인수했다.

장례 비용은 증가
투자 자본 확대로 장례 관련 비용은 증가 폭이 커졌다. 미국소비자연맹(CFA)과 장례소비자연합(FCA)의 공동 조사에 따르면 SCI 소유 장례식장의 서비스 가격은 동일 지역 내 독립 장례식장보다 평균 47%에서 최대 72%까지 높은 적이 있다. 소비자단체의 공동 보고서는 “SCI 계열의 브랜드 장례식장은 독립 업체 대비 가격 프리미엄이 크지만 소비자들은 이를 알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데스플레이션'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각국 규제 당국은 '가격 투명성'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영국 경쟁시장청(CMA)은 2021년 '장례 시장 조사 명령'이라는 규제책을 도입했다. 영국의 모든 장례지도사와 화장장 운영자는 표준화된 양식의 가격표를 사업장과 웹사이트에 의무적으로 게시해야 한다.

하지만 해당 규제의 한계가 나타났다. CMA는 관련 보고서에서 화장장 시장이 소수의 대기업에 의해 과점 됐고, 높은 진입 장벽으로 신규 경쟁자의 진입이 어려워 사업자는 구조적으로 높은 수익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가격 투명성만으로는 인프라 독점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미국에선 소비자 단체들은 가격 공개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전미 장례지도사협회(NFDA)를 비롯한 업계 단체들은 "소비자는 가격보다는 신뢰와 평판을 보고 장례식장을 선택하고 온라인 쇼핑은 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반대하고 있다
빚내는 유족들
'데스플레이션'은 국가 경제 전반에도 영향을 미친다. 과도한 장례 비용은 가계 부담을 심화할 수 있다. 유족은 고인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감에 대출이나 신용카드 할부 등을 통해 무리하게 비용을 지출하기 쉽다. 미국 연금 관련 컨설팅 사이트 '존스티븐슨(johnstevenson)'에 따르면 응답자의 57.7%가 장례 비용을 위해 빚을 지게 될 것이라고 답했다.



영국에서도 상황은 심각하다. 영국 보험회사 선라이프의 '2024년 최신 사망 비용(장례비용)'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 내 평균 장례비용의 증가 폭은 물가상승률을 웃돌고 있다. 작년 기준 단순 장례의 평균 비용은 4285파운드로 전년 대비 3.5% 올라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응답자의 20%가 장례비 지출로 재정 부담을 느꼈다. 장례비를 위해 빚을 지는 사람들의 평균 부채액은 3109파운드에 이른다.

빅토리아 하네만 미국 조지아대학 교수는 논문 '장례 빈곤'에서 “일반 소비자에게 장례 비용은 일생 발생하는 비용 중 세 번째로 큰 범주로 '죽음세(Death Tax)'와 같다"고 지적했다.

이런 경제적 어려움은 유족의 슬픔을 극복하는 과정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든다. 영국의 자선단체 퀘이커 소셜 액션(QSA)의 조사에 따르면, 장례 비용으로 재정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75%는 정신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았고, 34%는 식료품 같은 필수품 지출을 줄여야 했다고 답했다.
한국 장례 산업의 지배자들
한국의 장례 산업은 미국이나 유럽과는 다른 독특한 시장 구조를 보인다. 국내 시장의 양대 축인 병원 부속 장례식장과 대형 상조회사가 사실상 가격과 서비스를 지배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에서는 사망의 70% 이상은 병원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병원 부속 장례식장은 일명 '포로 고객'을 확보하는 데 유리한 위치에 있다. 유족들은 임종 직후 경황이 없는 상태에서 다른 선택지를 탐색할 심리적, 시간적 여유가 없다. 자연스럽게 해당 병원의 장례식장을 이용하기 쉽다.

또 다른 축인 상조 시장은 상위 5개 대형 업체가 전체 매출의 70%를 차지하는 과점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이들은 선불식 할부 거래 방식으로 운영된다. 복잡한 상품 구조와 해약의 어려움 등으로 인해 소비자 불만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다른 장례 비용 상승 요인도 있다. 한국의 화장률은 90%를 넘어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화장장과 봉안 시설 같은 핵심 인프라 공급은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님비 현상으로 신규 시설 건립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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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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