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반기 주식투자자라면 ‘금반지’ 하나쯤은 고려해봄 직하다.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 금융, 반도체, 지주회사가 하반기 주도주로 떠오르고 있다. 이승원 미래에셋자산운용 디지털플랫폼본부장은 “올해 상반기 국내 증시를 견인했던 ‘조방원(조선·방산·원전)’ 테마에 이어 앞으로는 금반지가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메리츠증권, 미래에셋증권, KB증권, NH투자증권 등 주요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에게 올해 하반기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시장을 이끌 주도주를 묻자 반도체가 압도적인 표를 얻었다.
미국의 AI 인프라 투자 확대가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실적 개선으로 이어질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고,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첨단산업 육성 정책까지 맞물리며 업황 개선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지난 9월 한 달간 반도체 위주로 상승세가 이어졌지만 3분기 실적 시즌과 미국 기술 기업들의 호실적이 겹치면서 국내 반도체 업종은 더 우호적인 환경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김동원 KB증권 리서치센터장은 “2026년 HBM 신규 증설을 제외하면 범용 메모리 생산능력 확대가 제한된 상태”라며 “메모리 수요가 AI 데이터센터에서 서버 D램, GDDR7, LPDDR5X, eSSD 등으로 확대되면서 구조적 성장기에 진입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리서치센터의 반도체 최선호주는 SK하이닉스다. 조수홍 NH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도 “SK하이닉스는 고성능 메모리 기술력을 기반으로 경쟁사와 차별화된 글로벌 1위 메모리 업체로 부상했다”며 “AI의 핵심인 eSSD와 HBM 비중 확대에 힘입어 견조한 실적을 이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근 코스피 랠리의 또 다른 축인 삼성전자도 분위기가 달라졌다. 기술 경쟁력 논란은 진정세를 보이고 밸류에이션 상승 여력도 남아 있다는 평가다. 시장에선 차세대 HBM4에 거는 기대가 크다. 그동안 주가의 발목을 잡았던 HBM이 오히려 호재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의 HBM3E 12단 제품이 엔비디아 품질 인증을 통과했고 업계에서는 이미 “수준급”이란 평가가 나온다.
풍문은 더 노골적이다. 엔비디아가 요구한 속도(9Gbps)를 두고 마이크론은 밀려났고 SK하이닉스는 8Gbps, 삼성전자는 10Gbps 성능을 보여주며 앞서고 있다는 업계발 소식도 전해졌다. 글로벌 업체들이 잇따라 HBM 시장에 뛰어들면서 기존 DDR 램은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는 것도 삼성전자엔 호재다. 가격은 이미 150% 급등했고 2027년 말까지 D1z 공정 기반 물량이 170% 수준으로 계약이 끝났다는 전언도 흘러나온다.
이 열기는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업종으로까지 확산될 전망이다. 이진우 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장은 “AI 반도체에서 시작된 공급 부족이 레거시 반도체로까지 번지면서 후공정 소부장 기업까지 온기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올 하반기는 다르다. 정책 드라이브가 새로운 주도주를 키워내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자사주 의무 소각’을 포함한 상법 개정안과 주주환원 확대를 밀어붙이면서 그 수혜가 금융주와 지주사에 돌아가고 있다. 배당 확대와 지배구조 개선 기대감은 구조적 리레이팅의 재료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은행·증권·보험주는 배당 확대와 자사주 소각 기대감에 오름세를 이어가고 있으며 지주회사들은 ‘지주 할인’ 꼬리표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커졌다. 자회사 가치 반영과 순환출자 해소 압력이 더해지면서 리레이팅 국면에 들어선 것이다. 이는 새 정부의 ‘코스피 5000’ 구호와 맞물려 금융·지주가 정책형 주도주로 부상하는 배경이다.
리서치센터장들의 ‘다음 픽’ 역시 금융과 지주로 향한다. 조수홍 센터장은 “정부 정책 모멘텀과 외국인 수급 확대가 맞물리면서 추가 지수 상승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금융업계를 짓눌러온 최대 리스크도 완화될 조짐이다. 홍콩H지수 폭락으로 불거진 ELS 불완전판매 사태 이후 최대 8조원에 달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던 과징금 부담이 크게 줄 전망이다. 정부가 금융소비자법 시행령을 개정해 과징금 하한선을 낮추고 감경 사유를 늘리면서 실제 부담은 최소화될 가능성이 크다. 충당금 적립이나 소송 비용에 대한 우려가 줄자 투자심리도 회복세다.
여기에 규제완화도 더해졌다. 정부는 ‘생산적 금융’을 내세우며 은행 자금이 가계대출에 머물지 않고 기업투자로 흘러가도록 압박하고 있다. 은행의 주식 보유 위험가중치를 400%에서 250%로 낮추면서 30조원 이상 여력을 확보하게 된 점도 호재다. 업계에선 “성장동력이 한계에 부딪혔던 은행산업이 포트폴리오 전환을 통해 장기 경쟁력을 높일 계기”라는 평가가 나온다.
실적 또한 탄탄하다. 금융지주 4사의 올해 3분기 합산 순익은 5조원에 근접할 전망이고 연간으로는 18조원을 넘어 사상 최대 실적을 새로 쓸 것으로 보인다. 내년에도 이익 규모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주가는 여전히 저평가 상태다. KB금융의 PBR은 0.72배로 상대적으로 높지만 신한·하나·우리금융은 0.56배 수준에 머물고 있다. 코스피 전체 PBR(1.2배)에 비해 여전히 싸다는 것이다.
이진우 센터장은 “방산·조선·원자력은 밸류에이션 부담이 해소되면 순환매가 재개될 수 있는 업종”이라며 “특히 국가전략 차원에서 육성되는 산업인 만큼 구조적 실적 레벨업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박희찬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장 역시 “방산 테마는 여전히 유효하다”며 “HD현대중공업, 현대로템은 경쟁력을 바탕으로 중장기 성장이 유망하다”고 강조했다.
원전 업종에 대한 기대감도 여전하다. 김동원 센터장은 “AI가 사람의 머리에 해당한다면 전력은 심장에 해당한다”며 “원전 확대가 전력망 확충의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영국 등 우방과의 원전 및 소형모듈원전(SMR) 협력 확대에 따른 한국 원전 업체들의 글로벌 수혜를 전망했다. 특히 SMR은 2050년까지 글로벌 신규 원전의 최대 24%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며 글로벌 원전 산업이 새로운 성장 사이클에 들어섰다는 분석이다.
이와 함께 IT하드웨어 업종도 차세대 주도주 후보로 거론된다. 조수홍 센터장은 “AI 서버와 자율주행 시스템에 필요한 첨단 MLCC와 서버용 기판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다”며 “IT하드웨어는 전장·산업용 부품과 서버 기판의 비중이 점진적으로 확대되면서 실적 개선이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 금리인하 트렌드가 항상 그랬듯, 바이오주와 로봇 등 미래형 성장주에도 훈풍이 불 것이란 전망은 설득력 있게 들린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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