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 탐방 때 일부러 임직원들이 담배 피우는 곳에 가봅니다. 미팅 때 알 수 없는 회사분위기를 확인할 수 있거든요."
이세철 씨티글로벌마켓증권 글로벌 테크 리서치 헤드 겸 한국지점 리서치센터장(전무)은 글로벌 반도체 산업의 맥을 잘 짚는 분석 보고서를 쓰기로 정평이 나 있다. 지난해 3월 한국인 최초로 글로벌 투자은행(IB)인 씨티의 반도체업종을 총괄하는 테크 리서치 헤드에 올랐다. 한국인이 글로벌 IB의 주요 업종을 담당하는 리서치 헤드가 된 건 이 전무가 처음이다.
부지런히 기업을 다니며 '비재무적 지표'를 살핀 것도 도움이 됐다고 한다. 이 전무는 "기업에 방문했을 때 직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포착되면 나중에 가동률 등이 올라가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다"며 "업황 변동의 징후가 확인되면 퍼즐을 맞추듯 크로스 체크하고 판단을 내리고 투자자들에게 뷰를 제시한다"고 설명했다.
이 전무의 첫 직장은 2000년 입사한 삼성전자다. 반도체(DS) 부문 엔지니어로 입사해 기획·마케팅을 거치며 11년 근무했다. 삼성에선 차장으로 2년 먼저 발탁될 정도로 '에이스'로 평가받았지만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하는 직업'에 대한 갈증이 컸다고 한다. 경영 전문 석사(MBA), 금융투자분석사를 따며 금융권 이직을 준비했고 국내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
반도체 전문성을 발휘해 이직 1년 만에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선정되는 등 업계에 돌풍을 일으켰지만, 스트레스도 컸다고 한다. 지금은 성향이 '외향적'이지만 증권사 이직 초기 땐 내향적 기질이 강했기 때문이다. 보고서만 잘 쓰면 끝나는 게 아니라 기업 탐방을 통해 사람들을 만나고, 때론 투자설명회를 나가서 고객의 얘기를 듣는 건 그에게 '고역'이었다고 한다. 이 전무는 "방송에 나가고 투자자를 만나는 게 두려웠지만, 인생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으로 부딪쳤다"며 "애널리스트 업의 본질은 '투자자 설득'이란 걸 깨달은 이후부터는 더 노력하게 됐고 더 편해졌다"고 말했다.
오랜 기간 담당했던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글로벌 기업 반열에 오르면서 이직에 도움이 됐다고 한다. 이 전무는 "반도체 기업은 생태계로 연결돼있기 때문에 엔비디아 투자자들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애널리스트에게 질문을 많이 한다"며 "미국 투자자들의 (한국 애널리스트에 대한) 수요가 컸던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 전무는 1년에 100일 이상 해외 출장을 간다. 한국에 있을 땐 오전 7시 15분 아침 미팅, 오후엔 기업 탐방, 밤 11시엔 뉴욕 고객과 영어로 전화 회의로 이어지는 일정을 소화한다. 한때 자본시장의 꽃으로도 불렸던 애널리스트의 대우와 위상은 과거만 못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도 15년 가까이 몸담고 있는 이유는 '다른 직업에서 얻기 힘든 성취감'이다.
이 전무는 "주식 시장 투자자들은 미래의 변화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갖고 있고 전문가의 뷰를 듣고 싶어 한다"며 "애널리스트는 의견을 제시하고 이정표를 만들어주는 '지도' 또는 '등대' 역할을 할 수 있어 보람이 크다"고 말했다.
한국 기업에 대해선 "메모리반도체 HBM을 앞세워 AI 시대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된 것은 다행"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경쟁국 대만이 AI 산업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높아지는 것에 대해선 "아쉽다"고 표현하며 "한국도 메모리 반도체 중심으로 생태계를 강화하며 새로운 사업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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