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며 러시아 경제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전쟁 특수에 기대던 경제 구조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서방도 대러 제재 강도를 다시 높이려는 모습이다. 둔화한 러시아 경제가 3년 넘게 이어진 전쟁의 전환점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실제 러시아 경제는 최근 들어 둔화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러시아 정부에 따르면 올해 러시아의 재정적자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1.9%다. 당초 예상치인 GDP의 0.5%보다 크게 늘었다. GDP 성장률 전망도 잇달아 하향됐다. 러시아 재무부는 올해 GDP 성장률을 2.5%에서 1%로 내년은 2.4%에서 1.3%로 낮췄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올해 러시아 국내총생산(GDP) 전망치를 기존 1.5%에서 0.9%로 하향 조정했다.
그간 러시아 경제는 전쟁 특수로 호황을 누려왔다. 전쟁 첫해에는 서방 제재와 외국 기업 철수 등으로 마이너스 성장률(-1.4%)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원자재 가격 상승, 중국·아랍에미리트(UAE) 등의 지원으로 상당 부분 상쇄됐다. 이들 국가로의 수출이 제재 회피 통로가 된 것이다. 당초 러시아 중앙은행이 2022년 성장률을 -8%로 예측했지만 실제로는 이보다 완만한 경기 위축을 겪은 이유다.
2023년부터 러시아 경제는 사실상 전시 체제로 전환됐다. 정부 지출 확대와 대출 증가가 투자·건설 등 전반적인 경기를 활성화했다. 러시아 싱크탱크 CMASF가 조사한 결과 2020년부터 2024년까지 기계·장비·건설자재 등의 투자는 36.5% 증가했다. 특히 군수 산업 부문이 급격히 성장했다. 전쟁 관련 보조금 등으로 민간 소비도 늘었다. 실질임금이 급등한 점도 소비를 떠받쳤다. IMF에 따르면 러시아 경제는 지난 2년간 4%의 높은 성장률을 보였다.
경기 과열 조짐은 2023년 하반기부터 드러났다. 실업률이 역대 최저치인 2.3%까지 떨어졌고, 임금 상승과 물가 상승이 가팔라졌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물가를 잡기 위해 2023년 7월 기준금리를 연 16%로 올렸다. 지난해 10월에는 기준금리가 역대 최고 수준인 연 21%까지 상승했다.
고금리로 인한 투자 위축으로 올초 경기 침체 신호가 뚜렷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막심 레세트니코프 러시아 경제부 장관은 지난 6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국제경제포럼에서 “러시아 경제가 불황 직전 상태에 있다”고 인정했다.
노동력 부족도 심각하다. CSIS는 “러시아는 소련 해체 이후 최악의 노동력 위기를 겪고 있다”며 “기술 수준도 낮아 노동력을 대체해 생산성을 높일 방법이 적다”고 봤다. 전쟁 동원과 대규모 해외 이주에 따른 노동 인구 감소로 생산성이 하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 노동부는 2030년까지 노동 인구가 240만 명가량 부족할 것으로 전망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올 1~5월 러시아의 평균 원유 수출 가격은 배럴당 약 59달러로 러시아 재무부가 가정한 배럴당 69.7달러를 크게 밑돌았다. PIIE는 “러시아가 지금의 경제 모델을 계속 유지한다면 더 어려운 선택에 직면할 것”이라며 “재정 측면에서 러시아 정부가 운신할 수 있는 폭은 크지 않다”고 평가했다.
러시아 정부는 결국 증세 카드를 꺼내 들었다. 지난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부가가치세를 20%에서 22%로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쟁 초기에는 석유 및 가스 잉여 수입으로 전쟁 비용을 충당했고, 이후 법인세를 인상했다”며 “이제 다른 재원이 없기 때문에 모든 국민이 기업이 전쟁 부담을 나눠야 하는 상황”이라고 짚었다.
다만 러시아 정부는 ‘경제 위기론’을 부인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거시 경제 안정을 위해 경제 성장 속도를 일부러 늦췄다”고 주장했다. 안톤 실루아노프 러시아 재무부 장관도 “석유·가스 의존도를 낮춰 대외 충격을 버틸 수 있는 구조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한명현 기자 wi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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