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년 2월과 9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는 ‘패션 도시’의 정수를 느낄 수 있다. 수백 년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궁전, 성당, 극장 등이 모두 런웨이로 변신한다. 현대와 미래가 공존하는 컬렉션이 중세 고딕 양식 건축물과 묘한 조화를 이루고, 옛 공장과 증류소는 럭셔리 브랜드의 무대로 탈바꿈한다. ‘도시 전체가 런웨이’라는 말이 실감 나는 순간이다.
밀라노 중심부에 있는 ‘팔라초 레알레’를 가보자. 18세기 나폴레옹 황제와 조세핀 황후가 머물던 왕궁이다. 패션 브랜드들은 이곳 1층 대연회장 ‘살라 델레 카리아티디’에서 쇼를 열기 위해 매년 치열하게 경쟁한다. 페라가모, 안드레아다모 등이 여기서 패션쇼를 했다.
15세기 밀라노를 통치한 스포르차 가문의 스포르체스코성도 럭셔리 브랜드들의 사랑을 받는 공간이다. 중세 르네상스 시대 거대한 요새이던 이곳에선 미켈란젤로 등 거장의 예술품과 함께 패션의 정수를 느낄 수 있다. 베르사체는 최근 스포르체스코성에서 2025 봄·여름(S/S) 시즌 패션쇼를 열어 고풍스러운 성곽과 현대적인 컬렉션의 조화로 호평받았다. 세계 성악가의 ‘꿈의 무대’로 불리는 라스칼라 극장은 패션위크 기간 시상식 무대로 바뀐다.
통상 왕궁이나 프라이빗 공간에서 열리는 패션쇼는 초청장을 받은 소수만 참석할 수 있다. 밀라노패션위크(MFW)에선 누구나 볼 수 있는 쇼도 열린다. ‘밀라노의 심장’으로 불리는 두오모 광장이 그 무대다. 1984년 밀라노 기반의 브랜드 트루사르디가 이곳에서 대규모 패션쇼를 연 게 시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엔 두오모 광장 앞 밀라노대성당 외벽에 대형 스크린을 설치해 모두가 쇼를 볼 수 있도록 했다. MFW 역사상 최초의 디지털 패션쇼였다. 2022년엔 몽클레어가 브랜드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두오모 광장을 2000여 명의 퍼포먼서로 꽉 채웠다.
밀라노에선 버려진 공장도 럭셔리 브랜드 쇼의 무대가 된다. 밀라노 외곽에 있는 ‘구찌 허브’는 1915년 지어진 항공기 공장을 개조해 만들었다.
폐증류소를 개조한 ‘폰다지오네 프라다’도 빼놓을 수 없다. 평소에는 프라다그룹의 미술 컬렉션을 전시하는 공간이지만 패션위크 때는 프라다와 미우미우의 런웨이로 탈바꿈한다.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감독으로 유명한 웨스 앤더슨이 디자인한 카페 ‘바 루체’도 이곳에서만 즐길 수 있는 특권이다.
밀라노=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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