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죄인이 되고 말았다.”2015년 예산안 초안을 받아본 기획재정부 예산실장이 긴 탄식을 내뱉었다. 초안대로라면 국가채무 비율이 40%를 넘을 것이 확실시됐다. 다행히 결산 기준 국가채무비율은 34%로 떨어졌고, 이 예산실장은 몇 년 뒤 거물 정치인이 됐다.
‘국가채무비율 40% 사수’는 우리나라 재정당국의 불문율이었다. 어떻게든 40%를 넘지 않아야 저출생·고령화 대비 복지 지출(10%포인트)과 통일 비용(10%포인트)이 추가되더라도 국가채무비율을 비기축통화국의 상한선으로 여겨지는 60% 이내로 묶을 수 있다는 계산에서였다.
돈을 쓰기는 쉬워도 아끼기는 어려운 법이어서 한번 봇물이 터지면 걷잡을 수 없을 것이란 우려도 있었다. 실제로 2020년 처음 40% 선이 무너진 이후 국가채무비율은 순식간에 60%를 향해 치닫고 있다.
그런 점에서 지난 24일 국제통화기금(IMF)이 ‘재정 프레임워크’ 등 신뢰할 수 있는 중기적인 ‘재정 앵커(관리 수단)’ 도입을 주문한 점은 귀담아들을 만하다.
IMF는 2010년부터 해마다 연례 협의 결과 보고서를 통해 우리나라에 재정 준칙이나 재정 프레임워크를 도입하라고 제안하고 있다. 재정 준칙이 1년 단위의 재정 관리 목표라면 재정 프레임워크는 3~5년 단위의 재정 관리 수단이다. 경기가 나쁠 때는 재정 적자 확대를 감수하더라도 돈을 풀고, 경기가 좋아지면 재정 적자 규모를 줄이거나 흑자로 전환해 재정건전성을 관리하는 방식이다.
돈을 풀 때와 거둬들일 때를 정하는 기준은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지출 규모 분석, 장기 부채 지속 가능성 평가, 정부의 잠재적 부채 부담에 대한 리스크 분석을 반영해 3~5년마다 조정하면 된다고 IMF는 설명한다. 이 대통령은 역대 최대인 728조원 규모의 예산을 편성하면서 “봄에 씨앗을 빌려서라도 씨를 뿌리고, 가을에 더 많이 수확해서 갚으면 된다”고 말했다. 문제는 씨앗을 빌릴 때와 갚을 때를 어떻게 구분하느냐다. 재정 프레임워크를 도입하면 이 고민을 해결할 수 있다.
서두에서 말한 당시 예산실장은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다. 지난 8월 예산안 발표 후 그는 페이스북에 “재정은 결코 화수분이 아니다”며 “국회 예산 심사 과정에서 재정 파탄을 절대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썼다. 예산 관료 시절 역사의 죄인이 되는 걸 두려워했던 송 대표가 정식으로 재정 프레임워크 도입을 제안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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