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전자는 어떻게 우주가 되었는가? 계속된다. 전편에 소개한 주전자 이야기에 독자들의 관심이 많았다. 그런 소소한 것이 주전자의 강점이라는 시각이 재미있다. 미처 생각지 몰랐던 관점이다. 독자인 나도 같은 생각이다. 너무 자의적인 시각(견강부회, 牽强附會)이다. 이 역시 공감하는 반응이다. 견강부회는 억지로 유리하게 맞춘다는 이야기다.
알다시피 주전자는 그저 사물이다. 그래서 지난 칼럼, 즉 주전자에 대한 독자들의 스펙트럼은 넓을 수밖에 없다. 사물인 주전자를 우주라고 하는 것은 형이상학일 것이다. 그런데, 그 내용을 보면 형이상학이나 철학이 아니다. 그냥 그렇다는 소소함이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렇다.
누구나 가지고 있고, 누구나 편하게 쓰지만, 그 소소함을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사실은 주전자의 바로 그 소소함 때문에 주전자는 주전자인데도 말이다. 그것을 생각해 보는 것이 코칭의 출발선이다. 이것은 코칭에서 얘기하는 성찰이자, 그 다음 단계인 의식의 확장이다.
주전자는 한마디로 얘기하면 확고한 존재감이다. 그 존재감은 어디서 나오는가? 바로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했던, 그저 그 용도만 알고 사용하던 소소함에서 나온다. 가정에서, 사무실에서, 기억 속 교실과 다방 난로 위에도 주전자는 있었다. 동서고금 현실 속에, 또 기억 속에 늘 주전자는 존재한다. 모양도 수천, 수만 가지다.
소위 꼰대에 속하는 세대가 술을 처음 접한 것도 주전자다. ‘막걸리 한 되 받아오라’는 아버지의 심부름에 등장한다. 뚜껑이 닫혀 있어 어린아이들 호기심이 마신 한 모금은 표가 나지 않는다. 주전자가 고맙다고 생각하는 아재들의 이야기다.
주전자의 소소함, 이번에는 다른 면에서 살펴본다.
불 위에 올려진 주전자, 요동이 없다. 시간이 지나면 뚜껑에 난 구멍에서 수증기로, 소리로 신호를 보낸다. 처음에 보내는 신호는 수증기다. 이어진 신호는 그 작은 뚜껑 구멍을 통한 분출이다. 뚜껑을 들썩이는 소리로 이어져 흘러넘치는 물로 마지막 경고를 한다.
아재나 꼰대들에게 주전자는 막걸리와 연결된다. 지금도 노란색 양은 주전자에 마시는 막걸리가 더 맛있다고 생각한다. 기억 속 학교 교실이나 다방 난로 위에는 뜨거운 물이, 때로는 결명자차가 끓고 있다. 체육 시간, 운동장에 줄을 그을 때 주전자는 매우 유용했다. 선을 긋기에 아주 적당한 양의 물이 나온다. 한 시간의 체육 시간 내내 그 선은 마르지 않았다.
학사주점의 쭈그러진 막걸리 주전자는 낭만이다. 구입한 지 얼마 안 된 반질반질한 새 주전자에 마시는 것보다 쭈그러지고, 변색된 주전자에 담긴 막걸리가 더 맛있게 느껴진다. 일부러 쭈그리고, 시멘트 바닥에 문지르기도 한다고 들었다. 이 주전자는 세월의 상징이다. 그래서 노포를 찾는 MZ세대들까지 쭈그러진 주전자를 찾는다.
그래서 주전자는 창작의 대상이고, 다품종 소량 상품이다. 그걸 부르는 이름과 기능이 주전자일 뿐, 그 디자인과 색상, 그리고 재질 등은 천차만별이다. 가정집, 식당, 공공장소, 호텔, 국가에 따라서 주전자의 생김새가 다르다. 우리가 잘 아는 ‘양은 주전자’를 제외하고 같은 주전자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소품종 대량 시장은 수요가 공급을 창출하지만, 다품종 소량 시장은 가격과 효용성으로 결정되는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 다시 말해 가치가 시장을 만든다.
주전자와 사람이 교감하는 지점이다. 이 지점까지는 우리가 잘 알아차리지 못했던 주전자의 소소함이고, 그 이후는 주전자가 사람에게 주는 효용, 즉 가치다. 주전자의 소소함이 바로 가치다. 그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을 뿐이다. 그래서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온 주전자는 그저 사물일 뿐이었다.
이런 주전자의 강점은 주전자가 우리의 역사와 함께해 온 이유다. 그럼에도 주전자는 주전자가 맞지만, 더 이상 주전자는 사물이 아니라, 우주가 되기에 충분하다. 사물인 주전자의 소소함과 가치를 발견하고, 알아차리는 것이 코칭의 힘이다. 존재에 대한 성찰을 통해 가치를 찾아내는 의식의 확장이다. 이것이 위대한 코칭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더임코치/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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