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 부총리는 후보자 시절부터 “기재부의 기존 부서를 구조조정해서라도 AI국을 신설하라”고 지시했다. 그는 경제성장의 새로운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선 AI 대전환이 핵심이라고 강조하면서 이를 전담할 부서도 국 단위로 설치하겠다고 했다. 경제수장이 공식적으로 밀어붙인 AI국 신설 논의가 ‘올스톱’된 것은 ‘경제 컨트롤타워’로서 기재부의 몰락을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간 기재부는 각 부처의 입장을 조율하기 위해 예산과 세제를 지렛대로 삼아왔다. 상·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을 설정하고, 경제관계장관회의나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나온 각종 현안을 조정하는 것도 이런 방식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26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따라 예산 기능은 신설되는 기획예산처로 빠져나갈 예정이다. 설상가상 금융위원회의 국내 금융 정책을 기재부와 통합하는 방안도 무산됐다.
기재부 한 관계자는 “정책 조율 카드가 세제밖에 남지 않은 가운데 다른 부처가 기재부 말을 들으려고 할 이유가 있겠느냐”고 했다.
기재부는 내년 1월 분리되는 기획예산처와의 인력 배분 문제를 두고서도 몸살을 앓고 있다. 최근 이형일 제1차관과 임기근 제2차관을 중심으로 태스크포스(TF) 조직을 구성하고 기획예산처 신설에 따른 인사 이동안을 마련하고 있다. 예산처엔 기재부 조직도상 예산실과 재정정책국, 재정관리국에 더해 1차관 산하의 미래전략국 중 일부 과가 이동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이 경우 기획조정실이나 대변인실을 제외한 실무 조직에선 실장(1급) 한 자리와 국장(2급) 세 자리만 있는 ‘초미니 부처’가 된다.
기획예산처로 옮겨 가는 인력들도 불만이 많다. 2008년 기재부로 통합되기 이전에 예산처로 입직한 이들을 ‘출신’에 따라 모두 신설 기획예산처로 배정하면 과장급 이상 직원이 기형적으로 많은 역피라미드 구조가 된다. 사실상 승진이 불가능해진다는 의미다. 과거 예산처 시절에는 몸집이라도 불렸지만 이번엔 그마저도 여의치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과거 예산처 소속 부서였던 공공정책국을 이번엔 재정경제부에 남겨두고 나갈 뿐 아니라 여당으로부터 견제받는 상황이어서 조직이 더 쪼그라들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동안 나라의 곳간지기 역할을 해온 기재부 예산실이 국무총리실 산하 기획예산처로 옮겨 가면 소신껏 재정 관리와 예산 집행을 하지 못하고 정치에 더 휘둘릴 수밖에 없을 것으로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이광식/정영효/김익환 기자 bumer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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