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국가정보자원관리원에서 발생한 화재는 그동안 정부가 세계적 수준이라고 자랑한 디지털 정부의 취약성을 고스란히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폭발 위험성이 있는 리튬이온배터리와 국가 주요 전산 정보를 담은 서버 간 간격이 단 60㎝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불과 2년 전 정부 행정 시스템 먹통 사고를 겪고도 전산 이원화 작업이 제때 이뤄지지 못한 탓에 유사 사고 재발을 막지 못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이번 화재로 모든 정부 행정 시스템이 먹통이 된 이유로 정부 재해복구(DR) 시스템 체계의 미비를 꼽았다. 현재 정부는 본원인 대전 외에 광주·대구센터에 DR시스템을 두고 있다. 하지만 이번 화재로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의 DR시스템이 ‘최소 수준’에 그쳤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가정보자원관리원 관계자는 “광주와 대구에 DR센터가 구축돼 있지만 최소 규모에만 적용돼 있고, 대구센터는 데이터 백업용으로만 구동되고 있어 큰 규모의 서비스는 바로 전환이 불가하다”고 말했다.
DR시스템은 정부 서비스가 멈추지 않도록 하는 일종의 백업 장치다. DR시스템은 주 운영 데이터센터에 장애가 발생하면 백업 센터가 대신 가동돼 서비스를 유지하게끔 하는 체계다. 지진, 화재, 정전과 같은 재난에 동일한 영향을 받지 않도록 멀리 떨어진 지역으로 분리한다. 이번 사고로 정부 DR센터의 ‘100% 이중화’가 안 돼 있는 데다 이마저도 서비스 연계가 미흡하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정부는 화재로 소실된 7-1 전산실 내 96개 시스템만을 대구센터 내 민관협력형 클라우드 서비스(PPP)로 옮기겠다고 밝혔다. 전원만 차단됐던 나머지 551개 시스템은 그대로 대전 본원에 두고 복구 작업을 한다.
대구센터에 입주한 삼성SDS와 KT클라우드 등을 앞세워 소실된 시스템을 ‘클린 빌드’ 방식으로 처음부터 다시 쌓겠다는 얘기다. 정부가 주장하는 빠른 복구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전망이다. 하드웨어 조달, 네트워크 구성, 망 연동과 데이터 이관까지 모두 다시 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가 시스템의 특성상 보안 인증 절차도 까다롭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삼성SDS, KT클라우드 등이 시스템 이관에 긍정적으로 협조하겠다고 했다”면서도 “PPP에 여유 공간이 있다고 판단해 추진하는 것일 뿐 이전에 소요되는 기간과 성공 가능성은 지금 단언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제야 관련 시범사업이 진행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린 데다 예산이 부족해 사업이 지연됐다는 설명이다. 국가정보자원관리원 관계자는 “액티브 투 액티브로 DR 시스템을 구축하려면 구축 비용이 두 배로 들어 예산 수천억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부 측 ‘데이터 두 시간 복구 규정’의 허상도 드러났다. 행안부는 지난 8월 발표한 ‘서비스수준협약(SLA) 표준안’에서 1등급 시스템은 두 시간, 2등급은 세 시간 이내 복구하도록 했다. 이 기준은 2026년까지 시범 운영 후 2027년부터 의무화된다.
최지희/권용훈/김영리 기자 mymasak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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