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아파트에서도 방 크기 등 집 구조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습니다. 똑같은 모양의 집에서 계속 살 필요가 없는 거죠.”
지난 26일 찾은 경기 용인의 삼성물산 ‘넥스트 홈’ 실증 공간(테스트 베드). 한 직원이 리모컨 버튼을 눌러 고정 장치를 푼 뒤 방과 방 사이를 벽처럼 가로막고 있던 옷장 중 하나를 밀자 스르르 움직이며 옆방이 나타났다.

이곳은 삼성물산이 2023년 개념을 제시한 미래 주거 모델인 넥스트 홈을 실제 건물로 구현한 곳이다. 3층 건물에 전용면적 84㎡ 주거 공간이 2층과 3층에 하나씩 들어가 있다. 일반적인 아파트와 다른 점은 집 내부를 가로막는 단단한 벽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
공간을 나누는 것은 모두 가변형 벽(넥스트 월)과 벽처럼 기능하는 움직이는 가구(넥스트 퍼니처)다. 화장실(넥스트 배스)도 원하는 곳에 배치할 수 있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공장에서 화장실을 통째로 만들어 가져올 수도 있고, 구성 요소를 가져와 현장에서 조립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집’ 구현에는 상당한 기술력이 요구된다. 삼성물산은 오래 전부터 관련 기술을 연구하고 개발해왔다. 넥스트 홈 핵심 기술인 ‘넥스트 라멘 구조’는 수직 기둥에 수평 부재인 보를 더한 라멘구조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가구 내부의 기둥은 없앤 무주(無柱) 형태의 새로운 평면이다. 여기에 원하는 대로 거실, 침실, 주방, 화장실을 배치하기 위해 집 어디에서든 각종 배관과 전선을 연결해 쓸 수 있도록 했다.
넥스트 홈은 바닥도 다르다. 보통 아파트는 기초 콘트리트 바닥 위에 완충재와 배관을 깐 뒤 기포 콘크리트를 붓는다. 몰탈로 바닥을 평평하고 나무 타일 등으로 마감한다. 이를 습식 공정이라 한다. 앞 작업이 굳어야 다음 작업을 할 수 있어 시간이 오래 걸린다. 배관에 문제가 생기면 바닥을 뜯어내야 하고, 층간소음도 큰 편이다.

건식 공정인 ‘넥스트 플로어’는 기초 콘크리트 바닥에 스프링 지지대를 설치하고 그 위에 공장에서 제작한 모듈형 바닥을 까는 것으로 이를 대신한다. 그만큼 공사 기간이 4~5개월 짧아진다. 층간소음도 1등급 기준인 37dB(데시벨)보다 낮은 33dB을 달성했다. “아이들이 뛰어도 층간소음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삼성물산이 이 바닥을 개발하는 데만 5년이 걸렸다.

넥스트 배스와 넥스트 플로어는 지난해 준공한 서울 ‘반포 래미안 원페타스’ 게스트하우스와 부산 ‘래미안 포레스티지’ 경로당에 시범 적용됐다. 넥스트 퍼니처는 과천주공10단지, 한남4구역, 개포우성7차 등 정비사업 조합에 제안해 적용을 앞두고 있다.
변동규 삼성물산 주택기술혁신팀장은 “날씨 등 공사 여건이나 노동 여건을 고려하면 공장에서 제작해 설치하는 모듈화로 갈수밖에 없다”며 “지금은 공사비가 더 들 수 있지만 넥스트 홈이 보편화할수록 비용이 떨어져 앞으로 기존 방식과 거의 비슷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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