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발전은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가져옵니다. 변화의 순간, 낡은 줄기를 붙잡을지 아니면 새로운 줄기로 갈아탈지 선택해야 합니다. 마치 나무 사이를 오가는 타잔처럼요.”윌 페이지 전 스포티파이 수석이코노미스트(사진)는 지난 26일 자신의 저서 <타잔 경제학>의 내용을 이같이 설명했다. 산업의 생사를 가르는 ‘갈아타기’의 기준을 제시하는 이 책은 원서로는 2021년, 한국어판은 2022년 한경 매거진&북에서 출간됐다. 출간된 지 4년여가 지났음에도 인공지능(AI) 상용화와 함께 다시 화제를 모으고 있다. 그는 이날 서울 성수동에서 열린 2025 스타트업콘에서 ‘음악산업과 AI : 스타트업의 기회와 도전’이라는 주제로 기조연설에 나서기도 했다.
페이지는 음악 스트리밍 플랫폼 스포티파이와 영국음악저작권협회 수석이코노미스트를 지냈다. 음악산업이 기술 혁신의 순간 맞닥뜨린 위기와 이를 극복해낸 방안을 <타잔 경제학>에 담아 영미권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다.
페이지는 영국 경제학자 윌리엄 제번스의 ‘제번스 역설’을 예로 들어 “교통 체증 해소를 위해 도로를 넓히면 사람이 몰리면서 오히려 길이 더 막힌다”며 “AI도 마찬가지로 효율성이 높아질수록 더 많은 콘텐츠가 생산되고 이를 다루는 사람, 즉 AI를 잘 쓰는 인재가 더 필요해진다”고 설명했다. AI가 인간을 대체할 것이라는 일부 전망과는 좀 다른 시각이다. 그는 “일자리를 빼앗는 건 AI가 아니라 AI를 활용할 줄 아는 다른 사람”이라며 “AI에 맞서 싸우거나 이를 외면하면 도태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페이지는 한국이 AI 시대 산업 전환의 선두 주자가 될 수 있다고 예측했다. 한국인의 강한 학습 의지와 성공에 대한 갈망 때문이다. 그는 “한국인은 질문하고 배우려는 열망이 크다”며 “변화의 시기에 스스로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낼 태도를 이미 갖췄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K팝·K콘텐츠 열풍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세계가 한국을 보고 듣는 건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니라 수십 년간의 꾸준한 노력 덕분”이라며 “AI 시대에도 이런 태도로 임한다면 전 산업에서 새로운 규칙을 선도할 수 있다”고 했다.
기존 언론·미디어산업에도 조언을 건넸다. 그는 “20여 년 전 음악산업이 불법 다운로드라는 위기에 직면했을 때와 AI로 인해 위기를 맞은 현재 언론 상황이 비슷하다”며 “언론도 줄기를 갈아탈 때가 온 것”이라고 했다. 이어 “당시 소비자가 불법 다운로드를 선택한 건 그들의 인성이 나빠서가 아니라 편리했기 때문”이라며 “소비자의 행동을 읽고 이를 활용하는 새로운 규칙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페이지는 기술 발달로 도전에 직면한 산업들에 “말을 호숫가로 데려갈 수는 있지만 호수를 말에게 데려올 수는 없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고 했다. 그는 “소비자가 먼저 다음 줄기로 넘어갔다면 그 산업은 이제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뜻”이라며 “그 순간이 다른 줄기로 옮겨탈 타이밍”이라고 했다. 또 “경제학자들은 모델이 현실과 맞지 않으면 소비자를 탓하지만 사실 틀린 건 모델”이라며 “현실을 비난할 게 아니라 소비자 움직임에 맞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소현/사진=임형택 기자 alpha@hankyung.com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