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7년 화재로 소실된 창덕궁 내전은 3년 간의 공사를 걸쳐 새롭게 재건되었고, 이때 전각 내부를 장식하는 대규모 벽화도 함께 제작되었다. '금강산만물초승경도' '총석정절경도'는 희정당의 벽을 채운 장대한 풍경화로 금강산 기암과 폭포, 숲과 물결을 장중하게 그려냈다.

'봉황도' '백학도'는 대조전에 걸린 상징화로 봉황은 황실의 존엄을, 학은 장수를 상징하며, 붓 결에 궁중의 품격을 담았다. '삼선관파도'는 경훈각에 있던 벽화로 바다 앞에서 대화하는 세 신선과 복숭아나무는 황실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은유다. 백 년을 몇십 번, 몇천 번 살아도 신선들의 나이를 이길 순 없다.

황실 벽화는 김규진·오일영·이용우·김은호·노수현·이상범 등 6명의 당대 대표 화가들이 붓을 잡았다. 각 작품 한켠에 남은 ‘근사(謹寫)’ 표기는 황제에 대한 존경과 작가의 자의식을 동시에 보여준다. 창덕궁 내전 벽화는 전통 벽화라기보다 비단에 그린 그림을 종이 배접 후 벽면에 부착한 방식으로 설치되었다.

부드러운 질감과 선명한 채색을 얻기 위한 전통 기법이었지만, 세월 앞에 비단은 갈라지고 안료는 퇴색해 갔다. 2013년 대조전의 작품 보존을 시작으로 2023년까지 희정당, 경훈각의 작품이 차례로 보존 처리되었다.

현재 창덕궁 전각에는 원본 대신 모사도와 영인본이 부착되어 있으며, 10월 12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 특별전시로 옛 모습 그대로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이지러지고 새롭게 피어났던 격정의 시대, 황실이 바랐을 평화와 장수를 오늘에도 간절히 염원한다.
정상미 기자 vivi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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