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정보기술(IT)업계를 중심으로 피땀(血汗) 문화로 불리는 ‘996 근무제’가 본격화한 것은 5~6년 전부터다.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9시까지 주 6일(주 72시간제) 일하는 방식이다. 살인적 노동이라고 비판받았지만, 중국 기술 굴기의 원동력이 된 건 부인하기 어렵다.엔비디아, 구글 등 글로벌 빅테크가 모여 있는 미국 실리콘밸리에도 996 근무제 바람이 불고 있다. 자율 출퇴근 등 워라밸 풍조가 사라지고, “일어나서 자기 전까지 일한다”는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처럼 열심히 일하는 ‘허슬 컬처(Hustle Culture)’가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배경엔 중국과의 기술 패권 경쟁이 자리하고 있다. 이는 혁신의 성과를 내기까지는 절대적인 근로시간 확보가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근로시간이 짧은 한국은 노동생산성도 낮다. 한국의 근로시간당 GDP 지표는 51달러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64.3달러)에 못 미치는 26위(2023년 기준)다.
일각에선 무리한 근로시간 단축이 산업재해를 예방하는 데 역행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사망 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건설업계가 특히 그렇다. 하청 구조가 관행화된 건설 현장의 경우 근무시간이 줄면 결국 영세한 도급업체가 원청의 물량을 떠안게 되는 탓이다. 근로기준법 준수가 느슨한 개인 도급업체는 지금도 근로시간을 초과해 할당 물량을 채우곤 한다. 지팡이 없이 걸을 수 있으면 다 채용할 정도로 인력난에 시달리는 건설 현장의 특성상 주로 60대 이상 고령자들이 이런 ‘음지의 노동’을 메운다. 산업재해와의 전쟁을 선포한 정부 의도와 달리 ‘위험의 외주화’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글로벌 경쟁의 최일선에 선 기업들은 그야말로 속이 탈 지경이다. 그렇다고 996 근무제와 같은 근로시간 연장을 요구하는 건 아니다. 주 52시간제라도 탄력적으로 운용해 만성적인 인력난을 해소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야 한가위를 앞두고 일시적으로 납기를 앞당겨야 하는 요즘 같은 시기에 숨통이 트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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