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자르극장에 앉아 있는 것도 꿈만 같았습니다. 이 수준 높은 대회에서 우승한 건 초현실적인 경험이었죠.”
올해 퀸엘리자베스콩쿠르 우승자인 니콜라 미우센(23)은 최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에서 아르떼와 만나 “기껏해야 결선 진출 정도 바랐지 수상은 생각도 안 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미우센은 지난 5월 벨기에 브뤼셀 보자르극장에서 열린 콩쿠르 결선에서 쟁쟁한 경쟁자 11명을 제치고 1위에 오른 2002년생 네덜란드 피아니스트다. 지난달 16~25일 서울, 제주, 충남 당진, 경북 경주 등 공연 일정으로 한국을 찾았다.
퀸엘리자베스콩쿠르는 쇼팽콩쿠르, 차이콥스키콩쿠르와 함께 클래식 음악계의 3대 콩쿠르로 꼽힌다. 결선 기간엔 연주자와 외부인의 접촉을 막기 위해 스마트폰 사용도 차단할 정도로 혹독한 대회다. 해마다 돌아가며 바이올린 피아노 첼로 성악 등 종목을 달리하는데 피아노 부문에서 우승자가 나온 건 2021년 이후 4년 만이다. 국내 피아니스트의 역대 최고 기록은 1991년 백혜선과 2016년 한지호가 세운 4위. 한국인에겐 유달리 문턱이 높은 콩쿠르였다.
미우센도 “준결선부터 3주간 계속 경쟁을 치러 격리에 들어가기 전부터 약간 지쳐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정작 결선 격리에 들어갔을 땐 평온함이 찾아왔단다. “오직 음악에만 집중하는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음악과 무관한 일은 모두 접어둘 수 있었으니까요.”
결선 무대는 선곡부터 화제였다. 미우센은 남들이 고르지 않은 프로코피예프 협주곡 2번을 택하는 대담함을 보였다. 다른 경쟁자 4명이 같은 작곡가의 더 유명한 협주곡 3번을 고른 것과 대비됐다. 미우센은 선곡 이유에 대해 “프로코피예프의 일기를 읽으며 그의 인간적인 면모에 매료됐다”며 “협주곡 2번은 음색과 화음이 폭발하며 거대한 감정의 파도를 일으키는 작품”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내는 피아노 소리는 섬세하면서도 또렷하다. 그런 소리를 내는 피아니스트는 여럿 있지만 미우센은 언제나 균형을 잃지 않고 다채로운 색감을 풀어낼 줄 안다. 연주 내내 그럴 만한 에너지도 충분하다.
그는 인공지능(AI)과 연관 지어 예술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AI는 빠르게 발전하고 있어서 예측할 순 없지만 음악은 (AI가 미칠 위협에서)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음악은 인간이 만들고, 이것이 바로 예술이 비롯되는 지점이니까요. AI가 만든 곡을 들을 수 있다는 건 흥미롭지만 결국 인간은 완전히 인간적인 무언가로 돌아갈 필요성을 느끼게 되지 않겠습니까.”
미우센은 인생의 특정 시점이나 과업을 목표로 제시하진 않았다. 그저 끊임없이 발전하며 계속 연주하는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다고. “멋진 홀에서 공연을 본 뒤 사람들이 오랫동안 그 음악을 생각하며 일상의 문제를 잠시 잊을 수 있다면 그걸로 좋아요. 10년이 지나도 계속 연주하며 음악가로서 발전하고 싶습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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