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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째 수장 공백’ 또다시 흔들리는 KAI

입력 2025-10-13 06:38   수정 2025-10-13 06:39

[비즈니스 포커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리더십 공백 속에 또다시 표류하고 있다. 강구영 전 사장이 이재명 정부 출범 후 지난 7월 1일 자진 사임한 뒤 차재병 고정익사업부문장이 사장 직무대행 체제를 이끌고 있지만 경영 공백이 길어지면서 KAI는 사업·수주·조직안정성 모두에서 ‘삼중고’에 빠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올해 핵심 방산 수주전에서 잇따라 패배하며 대외 신뢰도에 타격을 입었다. 1조8000억원 규모의 전자전기 체계개발 사업에서는 LIG넥스원–대한항공 컨소시엄에 밀렸고 앞서 방위사업청이 발주한 UH/HH-60 성능개량 사업, 천리안 5호 개발 수주전에서 대한항공과 LIG넥스원에 연달아 고배를 마셨다.

수주 실적도 부진하다. 2분기 말 기준 KAI의 누적 수주액은 3조1622억원으로 올해 목표인 8조4590억원의 37.4%에 불과하다. 이 추세라면 2년 연속 수주 목표 달성 실패가 유력하다는 관측이다.




사장 공백 100일…사업 차질 현실화


게다가 차기 사장 인선이 100일 넘게 지연되며 내부 혼란도 가중되고 있다. 사장 인선은 10월 들어서도 감감무소식이다. KAI는 1999년 외환위기 직후 정부 주도 ‘빅딜’ 정책으로 탄생했다. 삼성항공, 현대우주항공, 대우중공업의 항공기 부문을 하나로 합친 결과다.

시장의 요구가 아닌, 국가 산업 구조 개편 차원의 ‘정책형 합병’이었기에 KAI는 태생부터 정책 종속적 구조를 가졌다. 현재 최대주주는 한국수출입은행(약 26%), 2대 주주는 국민연금공단이다. 사실상 공공자금이 회사를 지배하고 있으며 사장 선임 역시 정부 영향력 아래 놓여 있다.

문제는 이 구조가 정권교체기마다 ‘사장 낙하산’ 논란을 불러온다는 점이다. 실제 역대 8명의 사장 중 내부 출신은 단 한 명뿐이다. 2013년 4대 사장 김홍경 전 사장은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임기를 1년이나 남기고 중도 사퇴했고 유일한 내부 출신인 5대 하성용 전 사장은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검찰 수사를 받으며 물러났다.

7대 안현호 전 사장은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자 연임을 포기했고, 8대 강구영 전 사장 역시 이재명 정부 출범 당일 사임을 발표하며 3개월 남은 임기를 채우지 않고 자진 퇴진했다.




핵심 사업 표류, FA?50 수출도 ‘경고음’


KAI의 핵심 사업은 단순한 항공기 제조가 아니다. KF?21 국산 전투기 양산, FA?50 경공격기 수출 확대, 수리온 헬기 유지보수(MRO), 그리고 우주·위성사업까지 모두 ‘국가 전략 사업’으로 분류된다.

현재 사장 직무대행 체제에서는 주요 의사결정이 늦춰지며 사업 추진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수익성 악화 우려 속에 차기 사장 인선마저 지연되자 KAI 노조는 9월 24일 수출입은행 앞에서 집회를 열고 조속한 임명을 촉구했다.

노조는 “사장 공백 100일, 인사 지연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항공우주산업의 미래를 좌우할 중대 사안”이라며 “KF-21 개발비 증가는 물론 폴란드 수출, 미 해군 사업까지 난항을 겪고 있다”고 주장했다. KAI는 경영 공백, 수주 실패, 사업 차질 등 구조적 위기에 직면했다. 노조는 “전문성과 책임감을 갖춘 새 사장 선임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방산업계 관계자들도 수출 교섭력 약화와 대정부 협의 지연을 우려하고 있다. 경영 리더십 부재, 수주 실패에 따른 재정 압박, 사업 지연이라는 구조적 위기에 봉착한 상황에서 조속한 사장 선임이 정상화의 첫걸음이 될 것이라는 게 방산업계 중론이다.

이 가운데 차기 사장 인선을 둘러싼 논란도 계속되고 있다. 강은호 전 방위사업청장, 류광수 전 KAI 부사장(한화에어로스페이스 부사장), 박인호 전 공군참모총장, 문승욱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이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지만 후보자별로 노조와 내부 반발이 엇갈리며 결정이 지연되고 있다.

노조는 강 전 청장에 대해 “공공기관 수장으로서의 기본도 갖추지 못한 인물”이라고 평가절하했고 류 전 부사장에 대해서는 “퇴직 후 KAI 내부 인맥을 유지하며 기술 인력의 한화 이직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한 인물”이라며 강하게 반대 입장을 밝혔다.

반면 문 전 장관에 대해서는 “현실적인 대안”이라며 비교적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후보 대부분이 이재명 대통령과의 정치적 연결고리를 가진 인사들이라는 점에서 또 한 번의 ‘정치 코드 맞추기 인사’가 이뤄질 수 있다는 불신도 함께 나오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LIG넥스원, 현대로템 등 주요 민간 방산업체들이 전문경영인 체제 아래 안정적인 장기 전략을 추진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KAI는 정권교체 때마다 사장이 바뀌는 정치 종속적 인사 시스템이 고착화돼 있다는 지적이다.




정치에 휘청이는 KAI…해법은 민영화?


KAI의 사장 인선이 정권 코드에 따라 요동치면서 방산 사업의 연속성과 신뢰도에 타격을 주고 있다는 지적도 계속된다.

한 방산업계 관계자는 “항공우주산업은 최소 5~10년이 걸리는 장기 개발 사업이 많아 리더십의 연속성이 핵심인데 정권만 바뀌면 사장이 교체되니 전략 일관성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근 KAI는 폴란드 FA?50 추가 수출 협상과 미 해군 고등훈련기 수출 등 굵직한 해외 사업 수주전에서 밀리거나 협상 지연을 겪고 있다. 업계는 리더십 공백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또 다른 방산업계 관계자는 “해외 바이어와의 신뢰 관계를 형성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파트너사의 최고경영자가 수시로 바뀌는 구조라면 중장기 프로젝트에서 신뢰를 갖기 어렵다”고 말했다.

KAI의 정치 외풍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해법으로는 사장 임기 보장과 인사 독립성 강화, 이사회 중심의 전문경영 체제 전환, 민간 참여 확대 및 민영화 등이 거론된다. 사장 임기 보장은 장기 프로젝트의 연속성을 위해 필수적이라는 지적이다.

또 정부가 아닌 이사회 주도의 사장 선임 구조로 전환해 정치적 개입을 차단하자는 목소리도 높다. 이사회에 외부 전문가와 산업계 인사를 포함해 의사결정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부에선 정부 지분 축소를 통한 부분 민영화 또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같은 민간 주도 구조 전환도 거론되고 있다.

KAI의 최대주주인 한국수출입은행은 KAI 민영화를 추진할 의사가 없다고 공식화한 상태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기재위) 소속 정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한국수출입은행은 “현재 KAI 주식 매각계획이 없다”며 “향후 대내외 여건 변화로 필요시 정부와 협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만 민영화론은 실현 가능성과 실익 면에서 논란도 적지 않다. 방산업체 특성상 핵심 기술과 정보가 국가안보와 직결돼 있으며 민영화가 곧 통제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특히 KAI는 전투기·위성 등 국가 핵심 전략자산을 개발하는 기업인 만큼 무작정 민간에 넘길 경우 안보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대표적이다.

김홍유 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한국방위산업협회 정책위원)는 “과거 삼성항공, 현대우주항공, 대우중공업 3개 회사의 항공기 부문을 합쳐 탄생한 회사이다 보니 조직 융합 차원에서 정부가 주도권을 갖기 위해 사장 인선에 개입했던 것이 관행처럼 굳어진 결과”라며 “국민의 세금으로 움직이는 국민연금, 산업은행 등이 투자하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이들이 기업을 통제하기 위해 경영에 관여하는 것은 여러 가지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했다.

김 교수는 KAI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선 민영화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산업은행이 22년간 대주주였던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이 한화그룹에 매각돼 정상화된 것이 대표적이다.

김 교수는 “정부 입김을 줄이고 내부 인사추천위를 통한 자율경영 체제가 필요하다. 10월 개최되는 서울 국제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ADEX) 등 국제 무대에서 책임 있게 협상할 리더의 부재가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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