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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원권 뒷면의 그 그림?...'조선의 혼' 서린 걸작들 대구에

입력 2025-10-01 15:11   수정 2025-10-01 15:27


오만원권 지폐의 뒷면 그림 중에는 연하게 인쇄된 대나무 그림 하나가 있다. 조선 세종대왕의 현손(5대손)이자 문인화가였던 탄은 이정(1554~1626)의 대표작 ‘풍죽’이다. 이정은 한국 최고의 묵죽화(수묵으로 대나무를 그린 그림) 대가로 꼽히는 인물. 그가 그린 풍죽에 등장하는 대나무는 휘몰아치는 바람에 당당히 맞서는 모습이다.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제자리를 지키는 줄기와 가지, 잎은 고난과 시련에 맞서는 선비의 절개와 지조를 상징한다.

지금 대구 대구간송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광복 80주년 기념 전시 ‘삼청도도’에서 이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삼청’(三淸)이란 ‘세 가지 맑은 마음’을 상징하는 매화(절개)·대나무(곧음)·난초(고결함)를, ‘도도’란 이 같은 마음이 물 흐르듯이 끊임없이 이어지길 바라는 소망을 뜻한다. 이번 전시에서 미술관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일제강점기 등 국난을 극복하려는 정신이 담긴 고미술 작품 100점을 선보인다.



이정은 미술사학계에서 조선 왕실 출신 문인화가 중 가장 중요한 인물로 꼽힌다. 이번 전시에는 이정이 제작한 시화첩인 보물 ‘삼청첩’(1594)이 사상 최초로 56면 전부 나왔다. 검은 비단 위에 금빛 안료(금니)를 써서 그린 대나무와 매화 등 그림들을 당대 유명 문인들의 시문과 함께 엮은 작품이다. 신현진 학예연구사는 “탁월한 기술적 숙련도와 예술성을 볼 수 있는 걸작”이라고 설명했다.

작품에 얽힌 이야기도 파란만장하다. 이정은 임진왜란 때 오른팔에 왜군의 칼을 맞아 큰 부상을 당했다. 2년간의 회복기를 거쳐 처음 그린 작품이 삼청첩이다. 왕족인 이정은 이 그림을 통해 조선의 자존감을 북돋고 왕실의 건재함을 알리려 했다. 병자호란 때는 화재로 소실될 뻔 했고 19세기 일본으로 반출되는 수모도 겪었지만, 1935년 간송 전형필이 거액을 주고 사들인 덕분에 고국의 품에 안길 수 있었다. 허용 대구간송미술관 학예총괄은 “임진왜란·병자호란·일제강점기를 버텨낸 이 유물 자체가 민족의 극복 서사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전시장에는 이정의 유일한 인물화 ‘문월도’, 한음 이덕형(1561∼1613)과 오달제(1609∼1637)의 대나무와 매화 그림, 일제강점기 항일 지사들의 매·죽·난 작품 등을 함께 만날 수 있다. 중후반부부터는 비슷한 주제의 수묵화가 계속 반복돼 일반 관객에게는 다소 지루할 수 있지만, 애호가들에게는 가치 높은 전시다. 전시는 12월 21일까지.


대구간송미술관에 방문했다면 미술관의 자랑으로 꼽히는 상설전시관도 반드시 들러야 한다. 국내 최고의 고미술 작품들이 있는 곳이다. 최근 이곳에는 혜원 신윤복의 ‘청금상련’, 추사 김정희의 ‘황화주실’ 조선을 대표하는 예술가들의 걸작이 새로 교체 전시되고 있다. 명품전시관에서는 공재 윤두서의 ‘심산지록’을 만날 수 있다.

대구간송미술관 옆에 있는 대구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이강소 화백의 대규모 회고전 ‘곡수지유’를 함께 들러볼 만하다.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초까지 열렸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회고전을 본 사람이라도 찾아갈 가치는 있다. 대구미술관 전시 공간이 훨씬 더 넓고 쾌적해 이강소 작품의 매력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화백의 초기 작품들과 함께 각종 아카이브 자료를 통해 당대 대구 현대미술가들의 여러 활동을 들여다볼 수 있다. 전시는 내년 2월 22일까지.

대구=성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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