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국가정보자원관리원 대전센터에서 발생한 화재 당시 소방인력 100여명과 장비 31대가 긴급 투입됐지만 실제 진화에는 제대로 나서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리튬이온 배터리 특성상 고열과 짙은 연기가 쏟아져 내부 진입이 사실상 불가능했고, 전산실 구조상 물 사용이 제한되면서 불길은 20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정부의 초기 발표와 위기 대응 격상마저 늦게 이뤄져 “재난 컨트롤타워가 무력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1일 소방청 등에 따르면 지난달 26일 오후 8시 15분께 국정자원 대전 본원 5층 전산실에서 불이 났을 당시 현장 직원들은 건물에 비치된 할론 소화기로 초기 진화를 시도했다. 일부 배터리에서 시작된 불길은 가라앉지 않았고, 7분 만에 다시 치솟았다. 출동한 소방대원들도 같은 소화기로 대응했지만 소용이 없었고, 전산실 내부에는 대량의 물을 뿌릴 수 없는 구조였다. 더구나 화재 초기 연소 확산을 억제할 최소한의 장치인 스프링클러조차 설치돼 있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전산실 특성상 설비 보호를 이유로 소방시설을 축소한 채 운영한 셈이다.
리튬 배터리 화재는 내부에서 발생하는 ‘열폭주(thermal runaway)’ 현상 탓에 단발성 가스 분사로는 꺼지지 않는다. 결국 소방대는 서버 보호를 이유로 대량의 물 분사를 할 수 없었고, 100여 명이 외부 대기만 하다 초기 골든타임을 놓쳤다. 불은 20시간 가까이 이어졌고 정부 전산망은 장기간 ‘먹통’되면서 일부 시스템은 데이터까지 소실된 것으로 전해진다.
화재 당시 소방대가 내부 구조와 설비 정보를 충분히 파악하지 못해 진입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화재가 발생한 대전 본원을 비롯해 대구·광주 등 국가정보자원관리원 3개 센터 모두 소방안전 특별관리대상에 포함되어 있지 않아서다. 소방안전 특별관리대상은 화재 시 사회·경제적으로 막대한 피해가 예상되는 시설을 지정해 집중적으로 관리하는 제도로, 공항 여객터미널이나 철도 역사, 전력·통신 지하구, 발전소·가스공급시설 등이 해당된다.
소방안전 특별관리대상으로 지정되면 소방청 지침에 따라 정기적으로 안전점검·훈련·컨설팅을 실시하고 화재 예방 점검 주기와 훈련 강도가 강화된다. 관할 소방서가 화재 시 진입로·내부 구조 등을 사전에 숙지해 대응 매뉴얼을 별도로 마련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이번 상황을 두고 “지난해 인천 아파트 전기차 화재 때와 판박이”라고 지적한다. 리튬 배터리 화재의 특성이 반복적으로 드러났지만 대응 매뉴얼은 개선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당시에도 고열과 검은 연기로 인해 소방대원들이 배터리에 물을 직접 주입하지 못했고 결국 불이 꺼지길 기다리면서 장시간 화재가 지속된 바 있다.
국정자원 화재 당시 정부의 늦장 대응도 도마 위에 올랐다. 화재 발생 직후인 지난달 26일 오후 8시 26분, 이미 내부적으로는 1·2등급 핵심 시스템 70개가 중단된 사실을 인지했음에도, 첫 공식 발표는 두 시간 뒤인 오후 10시 20분에야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70개 시스템만 피해”라는 축소된 설명을 내놨다가, 실제로는 647개 전체 시스템이 마비된 사실을 하루가 지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가동 이후에야 공개했다. 결과적으로 화재 발생 시점과 국민들에게 실질 피해 상황이 알려진 시점 사이에 11시간의 공백이 발생했다.
위기 경보 역시 늦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행안부는 오후 11시 40분 위기경보를 ‘경계’ 단계로 올렸지만, 이미 전산실 배터리 수백 개가 전소하고 정부 핵심 시스템이 차례로 멈춰 선 뒤였다. 전산망 전체 전원 차단이 이뤄진 것은 지난달 27일 오전 6시 30분인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가동과 위기경보 ‘심각’ 단계 격상은 그로부터 두 시간 뒤인 오전 8시 15분에서야 결정됐다. 화재 발생 후 무려 12시간이 지난 시점이었다.
정부24와 우체국 금융망 등 실생활에 밀접한 정부 서비스가 멈췄음에도 국민들은 원인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혼란을 겪어야 했다. 전국 주민센터와 우체국 금융은 전산 접속이 되지 않아 민원과 관련 업무가 줄줄이 멈췄지만, 이용자들은 원인을 몰라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일부 기관은 현장 안내문조차 제대로 붙이지 못해 민원인 항의가 잇따랐다. 행안부 관계자는 "정부 서비스를 관리하는 시스템도 화재로 손상되면서 파악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한편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이날 오후 6시께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와 관련한 현안질의를 진행한다. 회의에는 윤호중 행안부 장관, 이재용 국정자원관리원장, 김승룡 소방청장 직무대행이 출석할 예정이다. 배터리 납품사인 LG에너지솔루션, 이전 사업 수주사 일성계전, 대평엔지니어링 등 기업 관계자들에 대해서도 임의 출석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권용훈 기자 fac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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