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석에 본가 가기 너무 싫어요. 취업 공고도 없고요."
"친척분들 저 쉬고 싶어서 쉬는 게 아닌데요."
"연휴가 이렇게 긴데, 노는 게 오히려 무섭습니다."
"친척분들 저 쉬고 싶어서 쉬는 게 아닌데요."
"연휴가 이렇게 긴데, 노는 게 오히려 무섭습니다."
서울 상위권 대학을 졸업하고 최근 계약직 인턴을 마친 취준생 강 모씨(30)는 추석 연휴가 달갑지 않다고 했다.
그는 "백수 취준생인데 추석에 본가 가기 싫다. 추석 직전이라 그런지 공고가 진짜 없다"며 "친구는 대기업 다니는데 명절 상여금을 몇백 받았다더라. 그런 거 들으면 너무 부럽다"고 털어놨다.
강씨는 "추석이 끝나고 공고가 좀 더 올라오길 기대하지만 잘 모르겠다. 시골 내려가면 와이파이도 잘 안 터져 자소서도 못 쓴다"고 덧붙였다.
◇"본가 내려가기 싫다"…취준생들의 고백
2030 청년들에게 이번 추석 연휴는 휴식의 시간이 아니다. 올해 추석 연휴 기간은 10월 2일부터 9일까지 무려 8일간 이어지는 장기 연휴지만, 취업난 속에서 청년들에게는 오히려 압박이 커지는 시기다. 채용 공고는 뜸하고, 고향에 내려가면 친척들의 '명절 잔소리'를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수도권 대학 4학년에 재학 중인 취준생 이 모씨(25)도 비슷한 고민을 털어놨다. 그는 "돈도 없고 그러니 추석 때 그냥 단기 알바라도 하려고 한다. 무기력해지지 않으려는 것도 있지만 사실은 본가에 내려가지 않기 위한 좋은 핑계가 되기도 한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이 씨는 "지난해 추석 때는 막 취업 준비를 시작하면서 '1년 안에 하지 않겠냐'고 의기양양하게 말했는데 지금도 백수라 너무 부끄럽고 그렇다. 내가 쉬고 싶어서 쉬는 게 아닌데 슬프다"고 말했다.

이직을 준비 중인 김 모씨(29)는 "우리 집이 큰집이라 추석 때 무조건 모여야 하는데 친척들 보는 게 너무 무섭다. 같은 처지의 구직자 친구 집에 가서 피신해 있을까 싶다"며 "이번 연휴가 길지만, 오히려 맞춰 노는 게 무섭다. 스터디 카페도 추석 당일에는 쉬긴 하지만 나머지 날엔 카페라도 가서 공부하려 한다. 내년 설날에는 취업해 당당하게 친척들을 보고 싶고 부모님 걱정도 덜어드리고 싶다. 간절하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푸념은 대학 커뮤니티에서도 속속 올라오고 있다. "할 건 많은데 잔소리 들을 생각하니 머리가 아찔하다", "뭐 하나 잘 진행되는 게 없고 부모님 기대도 없으시다. 가기 싫다", "추석 때 내려가기 싫은데 핑계 댈 만한 것 좀 추천해 달라"는 글들이 줄을 잇는다. 청년들이 추석을 앞두고 겪는 압박감은 이미 사회적 현상이 됐다.
◇외모·연봉·결혼까지…카테고리별 잔소리 메뉴판 등장

이에 지난해 등장한 '명절 잔소리 메뉴판'이 올해에도 화제를 모으고 있다. "취업 준비는 아직도 하고 있니(15만 원)", "차라리 기술을 배워라(20만 원).", "회사에서 연봉은 얼마 받니(50만 원)", "머리가 좀 휑해졌다(100만 원)", "둘째는 언제? 외동은 외롭대(100만 원)" 등 대표 잔소리를 가격표로 풍자한 것이다.
한 메뉴판에는 중고등학생, 대학생·취준생, 직장인, 부부, 외모 등 카테고리별 메뉴판도 제작됐다. '무료로 제공되던 잔소리가 유료 서비스로 전환됐다'는 자조적 문구와 함께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현실을 드러냈다.
현장에서는 "쉬는 건 사치"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연휴에도 아르바이트하고, 스터디 카페에 모여 자소서를 쓰고, 카톡으로 공고 알람을 확인하는 청년들. 청년들의 목소리는 명절 잔소리 메뉴판보다 더 무겁고 절박했다.
올해에도 이러한 흐름이 계속되고 있다. '방구석 연구소'가 개인 맞춤형 잔소리 메뉴판 테스트를 선보였고, 요거트 브랜드 '요거트 월드가'는 '요월 잔소리 메뉴판'을 내세워 마케팅에 활용했다.
◇10명 중 8명 "추석에도 취업 준비"
실제 구인·구직 플랫폼 사람인이 성인남녀 2357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추석연휴 취업준비 계획’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8.1%가 “연휴 동안 취업 준비를 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보다 4.1%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세부적으로는 구직자의 82.4%, 직장인의 72%가 연휴에도 취업 또는 이직 준비를 이어간다고 응답했다. 기업 형태별로는 대기업 재직자의 84.5%가 가장 높았고, 중견기업(75.5%), 중소기업(69.7%) 순이었다.
연휴 동안 취업 준비에 투자하는 시간은 평균 4.7일로 집계됐다. '7일 내내 한다'는 응답자가 34.9%에 달했고, 3일(26%), 5일(13.7%), 4일(10.8%), 2일(8.3%) 순으로 나타났다.
연휴에도 취업 준비를 한다는 이유로는 '수시채용 위주라 공고가 언제 뜰지 몰라서'(43.6%·복수응답)가 가장 많았고, '공고 자체가 적어 취업이 힘들어서'(38.3%), '긴 연휴로 집중할 시간이 생겨서'(30.9%), '어차피 마음 편히 쉴 수 없어서’'(25.8%), '구직 리듬을 깨고 싶지 않아서'(25.3%) 등이 뒤를 이었다.
주로 집중하는 활동은 채용공고 탐색(78%)이 가장 많았고, 이어 입사지원(56.5%), 이력서 및 자기소개서 작성(44.4%), 면접 연습(14.7%), 포트폴리오 준비(12.9%), 자격증·어학시험 준비(12.2%) 등이 꼽혔다.

청년 고용 현실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8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전체 고용률은 63.3%로 작년 같은 달보다 0.1%포인트 상승했고, 15~64세 고용률 역시 69.9%로 0.1%포인트 올랐다. 하지만 청년층은 정반대였다. 15~29세 청년 고용률은 45.1%로 1.6%포인트 급락해 16개월 연속 하락세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60세 이상 고용은 40만1000명 증가했지만, 20대 청년 고용은 21만9000명 줄었다. 특히 '일도, 구직활동도 하지 않은' 이른바 '쉬었음' 인구는 264만1000명으로 7만3000명 늘었고, 30대 '쉬었음' 인구는 32만8000명으로 관련 통계 작성 이래 8월 기준 최대치를 찍었다.
사람인 관계자는 "하반기 채용 시즌이 이어지는 올 추석에 긴 연휴를 활용해 취업 준비에 뛰어드는 구직자와 직장인이 많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지희 한경닷컴 기자 keeph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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