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카오의 성장이 정체된 상황에서 불가피한 결정이었다.”
카카오가 15년 만에 대대적인 업데이트를 단행하면서 사상 최대 위기를 맞았다. 첫 번째 탭인 ‘친구’ 탭을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처럼 수정했고 세 번째 탭인 ‘지금’ 탭에 숏폼 등을 탑재했다.
이용자들은 거세게 반발하며 등을 돌렸고 카카오의 ‘본질’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카카오가 수익화에만 집중해 ‘간편한 메신저’라는 정체성을 잃고 이용자의 피로도를 높였다는 이유였다.
친구탭이 피드처럼 개편되면서 친하지도 않은 사람의 일상을 강제로 봐야 했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숏폼에 강제 노출됐다. 24시간 카카오와 함께했던 사용자들은 배신감을 표출했다. 누더기처럼 여기저기 붙은 광고는 사용자의 피로감을 더했다.
카카오는 몇 년 전 ‘쪼개기 상장’과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로 사회적 질타를 당했다. 당시 자본시장의 신뢰를 잃었다면 올해는 15년 만에 단행한 업데이트로 사용자들의 신뢰를 잃었다.
애플 앱스토어와 구글 플레이스토어에는 카카오를 향한 혹평이 이어지고 있다. “쉰내 나는 인스타 같다”, “프리챌과 싸이월드가 몰락할 때를 보는 것 같다”, “사용성은 고려하지 않고 남들이 하던 걸 다 쑤셔 넣었다” 등 신랄한 비판이 이어졌고 카카오톡 플레이스토어 평점은 최저인 1.0을 찍었다.
카카오는 결국 업데이트 엿새 만에 백기를 들었다. 카카오는 친구 탭 등을 개선해 오는 4분기 중 적용할 계획이다. 이번 업데이트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홍민택 CPO는 사내 게시판에 업데이트가 “카카오의 성장이 정체된 상황에서 불가피한 결정이었다”고 밝혔다.
홍 CPO는 “15년간 (메시징) 목적형 서비스로 제공된 것을 체류형 서비스로 확장하고 피드 형태를 통해 페이지 뷰를 무한정 늘리는 시도는 당연히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며 그럼에도 카카오의 성장이 정체된 상황에서 개편을 시도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성장가도를 달리던 기업이 정체 위기에 몰리자 과거 스스로 내세웠던 철학과 원칙을 뒤집고 오히려 이용자 경험을 희생하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카카오는 이번 업데이트로 광고 수익 확대와 체류 시간 증대, 그리고 AI 플랫폼 확장을 노렸다. 카카오는 최근 2년 만에 계열사 45개를 정리하며 ‘문어발식 확장’을 멈췄는데 정체된 상황에서 광고·AI라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내겠다는 계획이었다.
증권가는 신규 광고 단가가 기존보다 최소 10% 이상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소비자의 광고 반발심이 유독 높아진 상황에서 기업들이 카카오톡 광고로 수혜를 볼 수 있을지는 미지수가 됐다.
카카오톡의 사용자 수는 월평균 4930만 명이다. ‘전 국민 메신저’라는 별명답게 업데이트의 여파는 광범위했다. 카카오 시가총액은 업데이트 이후 이틀 동안 직전과 비교해 3조원가량이 증발했다. 카카오의 죄목이 무엇이길래 이토록 가혹한 저항에 직면한 것일까.

‘2022년 대학생들이 가장 가고 싶은 기업 1위’.
카카오에 따라붙던 수식어다. 대학생들이 가고 싶은 기업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카카오는 한때 한국 IT 혁신을 상징하며 ‘판교의 얼굴’로 통했다. 메신저 카카오톡을 중심으로 금융, 모빌리티, 콘텐츠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며 한국형 빅테크 기업으로 성장했고 젊은 세대에게는 “빠르게 성장하는 기업과 함께 커리어를 키울 수 있는 곳”으로 인식됐다.
하지만 현재 카카오는 혁신은커녕 ‘본질’마저 잃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플랫폼 기업의 생명인 사용자 경험(UX)과 사용자 인터페이스(UI)의 기본 원칙마저 간과했다. 일관성과 단순성, 명확성, 감정적 만족도를 모두 훼손한 것이다.
이번 개편의 핵심은 카카오톡을 ‘메시징 중심’에서 ‘체류형 피드 서비스’로 확장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용자가 카카오톡에서 기대하는 경험은 “빠르고 간단한 메시지 송수신”이었다. 하지만 기업의 성장 논리에 따라 피드를 강제로 노출하면서 이용자 목표와 서비스 방향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카카오톡은 지난 15년간 대화 중심의 단순한 UX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이번 업데이트에서 갑작스레 피드형 구조를 도입하며 기존 사용 패턴을 무너뜨렸다. 이로 인해 “카톡답지 않다”는 반응과 혼란이 이어졌다.
사용자가 원하는 정보보다 불필요한 콘텐츠가 전면에 드러나는 구조였다. 더구나 피드를 끌 수 있는 사용자 옵션조차 부재해 자기 경험을 통제할 수 없다는 불만을 키웠다. 업데이트의 목적과 효과에 대한 명확한 설명조차 부족해 “왜 이런 걸 강제로 보게 하느냐”는 반발이 거세졌다.
생활 필수 앱으로 자리 잡은 카카오톡에서 이용자 경험이 흔들린 것은 단순 불편을 넘어 신뢰 하락으로 이어졌다. “카톡이 결국 광고 플랫폼으로 전락했다”는 냉소가 퍼지며 기업 이미지에도 타격을 줬다. ‘메시지’ 기반의 플랫폼 기업이라는 정체성이 흔들리면서 소비자들은 ‘카카오가 우리를 기만했다’는 표현까지 쓰고 있다.
15년 만의 개편으로 카카오가 역풍을 맞자, 네이트온과 라인 등 다른 메신저들이 반사 이익을 노리고 있다.
지난 달 30일 애플 앱스토어 ‘소셜 네트워킹’ 부문 인기 순위를 보면 네이트온이 1위, 라인이 2위를 차지했다.

이용자들은 피로를 넘어 정신적 스트레스까지 호소하는 지경이다. 궁금하지 않은 직장 상사의 일상을 강제로 봐야 하고 카카오톡을 열면 다른 사람의 얼굴이 대문짝만 하게 노출된다.
성인뿐만 아니라 어린 학생들의 카카오톡도 자동으로 업데이트되면서 숏폼 영상들이 무분별하게 노출됐다.
가뜩이나 일부 아이들이 숏폼 영상 시청과 스마트폰 사용에 중독된 상황에서 카카오톡까지 가세하자 학부모들이 들고 일어났다. 한 이용자는 앱스토어 평점에 “애들 폰에 인스타, 유튜브도 차단했는데 누구 마음대로 숏폼을 넣냐”며 반발했다.
카카오는 한때 ‘국민주’로 불렸다. 카카오 소액주주는 2020년 말 56만1027명에서 2022년 9월 30일 주주 명부 기준으로 총 201만9216명을 기록했다. 당시 한국 주식시장에서 개인투자자가 200만 명을 돌파한 것은 삼성전자에 이어 두 번째였다.
투자자들의 기대는 오래 가지 못했다. 2021년 16만7000원까지 올랐던 주가는 2년 만에 3만원대로 고꾸라졌다. 쪼개기 상장,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 문어발식 사업 확장, 내부 통제가 불가능한 경영 방식에 대한 끊임없는 파열음이 울렸다.
2021년에는 카카오의 주요 계열사인 카카오페이 경영진 8명이 상장 한 달 만에 스톡옵션 주식을 단체로 매각하면서 비난의 대상이 됐다. 올해는 창업주의 사법 리스크까지 겹쳤다. 검찰은 SM엔터테인먼트 주가조작 혐의로 기소된 김범수 카카오 경영쇄신위원장에게 징역 15년과 벌금 5억원을 구형했다.
카카오의 추락은 신뢰를 잃으면서 시작됐다. 주가는 현재 5만원 대지만 여전히 투자자의 87%가 손실구간에 있다(NH투자증권 데이터).
어떻게든 성장동력을 찾아내려 했던 경영진의 판단도 설득력이 있다. 카카오는 지금까지 전 산업군에 걸친 서비스를 론칭하며 수익화에 나섰지만 눈에 띄는 성장동력을 찾는 데는 실패했다. 여기에 미래 전략을 제시해야 할 오너까지 부재 중인 상황에서 카카오는 ‘광고’라는 익숙한 해법을 들고 나왔다.
그러자 내부에서는 카카오톡 개편을 주도한 경영진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지고 있다. ‘빅뱅 프로젝트’로 불리는 카카오톡 개편은 지난 2월 영입된 홍민택 CPO가 주도했다. 하지만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서는 실무 개발자 반대에도 불구하고 홍 CPO를 포함한 경영진이 무리하게 카카오톡 개편을 추진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일각에서는 카카오톡 개편으로 인해 경영진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업계 관계자는 “홍 CPO의 전략이 아주 틀렸다고는 할 수는 없지만 컨설턴트 출신답게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숫자를 올리는 데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플랫폼 비즈니스의 본질은 이용자를 잃으면 광고주도 잃는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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