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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세자 실종사건' 한아름 작가 "사랑 그 이상…본질을 잃어버린 사람들 이야기"

입력 2025-10-08 16:10   수정 2025-10-08 19:32

"정치인들이 민생이 아닌 엉뚱한 일에 몰두하고, 연애에서도 다른 관련 없는 이야기로 상대방과 싸움이 번질 때가 있죠. 그런 '본질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오는 18일 경기도 하남시 하남문화예술회관 대극장 무대에 오르는 뮤지컬 '왕세자 실종사건'의 한아름 작가(48)는 오랜 시간 사랑받는 이 작품의 주제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만난 그는 '왕세자 실종사건'을 비롯해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1년을 다룬 '영웅'(2009년 초연), 시인 윤동주의 삶을 조명한 '윤동주, 달을 쏘다'(2012년 초연) 등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한 역사 뮤지컬을 꾸준히 써왔다. 덕분에 '일제강점기 항일 전문 작가'라는 별명도 얻었다.

2005년 연극으로 초연한 '왕세자 실종사건'은 관객과 평단의 호평에 힘입어 2010년 뮤지컬로 무대를 넓힌 작품이다. 배경은 조선시대 궁궐 안. 어느 날, 왕세자가 감쪽같이 사라진다. 그런데 왕세자의 행방을 추적하는 일은 점점 엉뚱한 방향으로 흐른다. 용의자로 지목된 중궁전 나인 '자숙'과 동궁전 내관 '구동'이 서로 사랑하는 관계라는 사실이 드러난 것. 여기에 자숙의 임신 사실까지 발각되며 왕, 중전 등 다른 인물과의 얽히고설킨 관계가 이야기의 중심을 차지한다.

한 작가는 "왕세자를 찾아 나섰던 궁궐 사람들은 자숙과 구동의 사랑 이야기로 관심을 옮기고 공연이 끝날 때까지 왕세자를 찾지 않는다"며 "단순히 사랑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본질을 잃어버린 사람들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한 작가는 당시로서는 신선한 극작법을 도입했다. 왕세자가 사라진 현재 시점에서 실종 사건이 벌어진 과거로 되감기 한 뒤 자숙과 구동이 입궁하기 전으로 한 번 더 시공간을 옮기는 이른바 '플래시백' 방식이다. "극에서 과거로 들어가는 극중극까지는 많이들 쓰죠. 그런데 여기서 한 번 더 과거로 돌아가는 건 파격적인 시도였어요. 무대 위에선 마치 화면이 거꾸로 재생되듯 배우들이 뒤로 걷는 식으로 거꾸로 움직여야 해요."

무대 연출도 독특하다. 구중궁궐을 실감나게 구현하는 대신 관객이 상상으로 무대를 채울 수 있도록 했다. 최근 연극계에서 유행하는 빈 무대를 보는 느낌이다. "무대 바닥은 궁궐의 네모난 돌바닥에서 힌트를 얻어 바둑판 무늬로 표현했어요. 이 안에서 배우들은 직각으로 움직여요. 직급이 낮은 사람들은 궁궐 안을 가로질러 다닐 수 없었기 때문이죠. 딱 한 번, 자숙이가 구동이를 만나고 헤어진 뒤 속상한 마음을 담아 노래를 부를 때 무대를 사선으로 가로지릅니다."

탄탄한 짜임새와 실험적인 무대 연출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2012년 한국뮤지컬대상 베스트 창작 뮤지컬상, 한국뮤지컬대상 연출상 등 다수의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전미도, 강하늘 등 지금은 인기 스타가 된 배우들이 거쳐 가는 '신인 등용문' 역할도 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처럼 한국적 소재가 그 자체로 흥행 보증수표가 된 오늘날, '왕세자 실종사건'은 한국적 전통을 녹인 공연예술의 원조로 평가받는다. 2018년엔 대만 창작 뮤지컬 페스티벌에 초청되며 해외 진출 가능성도 확인했다. "중화권에는 내시 문화가 있었기 때문에 작품에 대한 관객들의 이해도가 높고 반응도 좋았어요. 언젠가는 미국 브로드웨이 무대로 진출하고 싶어요."



그의 필모그래피가 나타내듯 한 작가는 '역사 덕후'다. 그는 서울예술대 극작과를 거쳐 프랑스 파리 제8대학에서 연극과 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유학을 해서 그런지 서구 문화에 대한 동경이 없어요. 오히려 소재적으로 봤을 때 동양의 설화가 더 뛰어나다고 생각해요. 운명같이 우리 것에 끌린 거죠. 농담이지만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중에서 99명까지는 작품으로 만들어보자고 말할 정도로 역사에 관심이 많아요."

다음 작품도 역사물에 기반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우수 신작을 발굴하는) 창작산실에 제가 쓴 뮤지컬 '적토'가 선정돼 내년 3월 무대에 올릴 예정이에요. <삼국지>에 등장하는 명마 '적토마'가 주인공인데, 마구간에서 태어나 다시 마구간으로 돌아와야 하는 말을 통해 인간의 삶에 관해 이야기하는 작품입니다."

역사 소재 작품의 매력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과거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건 다 똑같아요. 그때라고 특별한 게 아니라 '보편타당함'이 있죠. 관객들이 그걸 느끼고 공감할 때 역사를 소재로 글을 쓰는 보람을 느낍니다."

허세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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