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증시가 인공지능(AI) 관련주를 중심으로 가파른 랠리를 이어가면서 버블 논쟁이 고조되고 있다. 2000년 닷컴버블이 꺼졌을 당시 나스닥지수는 정점에서 2년5개월 동안 약 80% 폭락했다. 2000년의 고점(5048)을 회복하는 데 15년이 걸렸다. 그 공포를 기억하는 월가에선 지금의 AI 주도 랠리가 버블 붕괴로 이어질 주가 과열의 전조인지, 아니면 수년간 계속될 구조적 강세장의 초입인지 의견이 분분하다.

주가 고평가 여부를 판단하는 전통 지표들만 보면 해석이 엇갈린다. 워런 버핏이 “밸류에이션 단일 지표로 최고”라고 칭한 ‘버핏지수’(미국 상장 주식 시가총액÷국민총생산)는 7일(현지시간) 기준 220%를 넘었다. 닷컴버블(140%)과 코로나19 직후 유동성 랠리(190%) 당시 수준을 뛰어넘었다. 반면 대형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100은 향후 12개월 주가수익비율(PER)이 28배 수준으로, 닷컴버블 정점(47배)에 아직 크게 못 미친다.
최근 AI 버블론의 핵심은 따로 있다. 첫째, 투자 수익성 문제다. 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구글·메타·오라클 등 대규모 클라우드 서비스 사업자(CSP)들이 AI 구동에 필요한 컴퓨팅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경쟁적으로 쏟아붓고 있지만 그 이상의 수익으로 돌아올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JP모간은 미국 5대 CSP의 AI 자본지출 규모가 2027년까지 1조2000억달러(약 1697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한다. 데이비드 아인혼 그린라이트캐피털 창업자는 “지금 오가는 수치들은 비현실적”이라며 “막대한 자본 파괴가 일어날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했다. AI가 세상을 바꿀 혁신적인 기술임은 분명하지만, 단기 수익성은 별개의 문제라는 얘기다.
이날 오라클이 엔비디아 블랙웰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임대하는 사업에서 지난 1년간 총마진율이 14% 안팎에 불과했다는 보도가 전해지면서 이런 우려에 기름을 부었다. 다른 오라클 사업 마진(68.7%)에 비하면 5분의 1 수준이다.
부채자본비율이 500%를 초과한 오라클은 최근 오픈AI와의 대규모 계약을 이행하기 위해 180억달러 규모의 부채를 발행했고, 메타 역시 데이터센터 건설을 위해 260억달러 대출을 받았다. AI 인프라 투자 사이클은 빚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현금 흐름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이 과거 닷컴 버블과 결정적으로 차별되는 점이었는데, 그 패턴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리사 샬렛 모건스탠리자산운용 최고투자책임자(CIO)는 “하이퍼스케일러들의 잉여 현금 흐름이 감소하면 밸류에이션 논란과 투자 수익률에 대한 압박이 커질 수 있다”며 “AI 투자 열기가 꺾이면 강세장이 지속되기 어렵다”고 경고했다.
엔비디아와 오픈AI를 중심으로 한 오라클, AMD, 코어위브 등의 ‘순환거래’ 논란도 투자자 불안을 키우고 있다. 엔비디아가 오픈AI에 최대 1000억달러의 지분 투자를 하고 그 돈으로 엔비디아 칩을 사도록 하는 구조나 오픈AI가 AMD의 신주인수권을 받아 그 자금으로 AMD 칩을 구매한다는 구상이 수요와 매출을 왜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버블 장세 우려를 공유하는 이들 사이에서도 아직은 터질 때가 아니라는 게 중론이다. 버블은 유동성의 결과인 만큼 중앙은행이 긴축으로 돌아서지 않는 한 계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투자운용사 GMO의 제러미 그랜섬 공동창립자는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뷰에서 “현재 주식시장엔 과도한 낙관과 풍부한 유동성이 공존한다”며 “버블의 수명은 통화정책과 투자심리에 달려 있으므로 닷컴버블처럼 터지기 직전까지 부풀 수 있다”고 했다.
뉴욕=빈난새 특파원 binther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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